12월 28일, 2010년 한해가 저물어 가는것이, 김대을이 우리곁을 떠나간것이,
아쉬운 듯, 억울한 듯, 간간히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그 눈속에 평소에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친구들이 모여 그를 추모하는 조촐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하영호 목사의 기도로 그를 추모하는 자리가 열리고,
하나 둘, 그의 지나온 흔적들이 아이들 입을 통해
때로는 환한 웃음과 깊은 상념, 때로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동반한채 순서없이 흘러나오며
그를 회상하고 추모하는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모든이들이 같은 시공간, 또는 다른 시공간에서 고인과 부닥끼며 함께했던 일들이
코 흘리던 어릴적부터 타계하던 그 날까지 무작위로 꺼내어 지며 그를 회상하고 추모하는 동안,
나는,
광호가 평소에 과묵하던 광호가 그리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봤으며,
인남이가 달변이던 인남이가 그리 조용한 것에 놀랐으며,
준재가 고인만이 아닌 그의 주변에 그리 깊은 인연의 끈을 가지고 있었음을 새삼 알았고,
명욱이가 고인과 혜화동 동네 꼬마 친구였다는것도.
현룡이가 우리 동기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것을 다시 확인하였으며,
영호의 시려깊음을 또 한번 느꼈으며,
종춘이와
창환이가 고인에게 투정조로 들복였던 많은 사연들이 있었음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그 끈적 끈적한 인연의 끈을 참으로 폭 넓게 널어놓았다는 이야기이지요,
어디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에게만 이었겠습니까?
하여, 하영호 목사가 고인이 음악인 및 예술인에게 널어놓은 인연의 끈도
시간을 두고 점검하여, 가능하다면, 그들이 기꺼이 동참한다면,
1년 쯤 후인 일주기를 겸한 그를 추모하는 작은 음악회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작은 추모 모임이 끝나갈 무렵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를, 고인을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들이 오늘 모임의 경비를 가지고 말입니다.
멀리서 현룡이가 그건 내가 부담하려고 이리 달려왔으니 양보하고 싶지 않다부터
광호가 그건 당연히 내가 처리해야할 사항이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에는 저 멀리 타국에서 대을이의 부음소식을 듣고 엉엉 울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던
고인과 유일하게 양방향으로 쌍소리가 가능했던, 배희영이가 명욱이를 통해 부담을 했습니다.
세밑 미끄러운 길에 넘어지지 않게 서로 서로 걱정해주면서,
어둠속으로 하나 둘씩 우리 친구들이 웃음지며, 손 흔들며 사라져 갔습니다.
속으로
"그래 저 하늘 위 어딘가에서 고인이 지켜보고 있을게야.
다들 2010 년 잘들 보내시고 내년에 보세~~"
하면서 말입니다...
고인을 추모하면서,
윤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