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9일
열풀과 같았던 월드컵 축구도 끝나고(?)야 좀 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여기저기 한 참이나 돌아온 오랫만의 서울고 20회 동창회보를 보았다. 6월 말에 5월호를 보았으니 한참이나 현실에 뒤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번쩍 들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보아도 반가운 서울고 20회 동창 친구들. 그립다는 생각도 든다.
작년 여름 오랫동안 터줏대감 처럼 오래 살았던 L.A.를 조용히 떠나 공기맑고 시원한 페블비치 근처로 이사를 했으면서도 L.A.동창 아무에게도 연락을 못하고 거의 1년을 지났다.
마치 속세를 떠나 별천지에서 살듯이 혼란했던 머릿속도 많이 정리가 되었다.
서울의 친구들, 토론토의 친구, L.A.의 친구들 모두 보고싶다.
연란처: 전화 (831)428-2058, email: mys123us@yahoo.co.kr
정 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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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꺼져버린 자비의 등불
如是我聞
그날도 나그네는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밤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음도 얼지 않는 캘리포니아의 겨울이라곤 하지만 겨울비가 질척질착 내리는 그 날 밤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낮이면 따가운 햇볕에 반소매로 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그네에겐 여간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겨울 밤이였습니다.
나그네가 일하는 가게는 주유소겸 편의점으로 24시간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곳이였습니다.
밤 두시쯤 되었을까 늦은 밤이라 손님도 별로 없는 가게안에서 나그네는 항상 하는대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며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자취를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때 누군가가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음을 느끼고는 무심히 가게 바깥 쪽을 내다 보았습니다.
가게 바깥에는 아직도 찬바람이 횡하니 불고 있었고 졸린 듯이 매달려 있는 가로등에는 빗줄기가 드문드문 반사되고 있었습니다.
바깥에는 가끔이면 주유소의 손님들에게 구걸을 한 동전들을 한 웅큼씩 쥐고 와서는 대개가 맥주캔이나 아니면 가끔은 커피와 도너츠를 사가곤 하는 주유소근처에서 살고있는 홈리스 한 사람이 애처로눈 눈길을 나그네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눈길이 서로 마주치자 홈리스의 사나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만 상당히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는 나그네에게 손에 쥔 동강 담배꽁초를 보이면서 불을 좀 빌리자고 했습니다.
가게 안은 담배를 피울 수가 없어 나그네는 바깥에 나가서 담배에 불을 붙여 주겠다고 하며 그 사내를 따라 가게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가서 라이터로 담배불을 붙여주며 추위에 달달 떨고 있는 그 사내를 보니 위에는 짤아빠진 티셔츠한장에다 꼬장꼬장한 춘추용의 얇은 점퍼에 아래는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고( ?) 있는 속살이 비칠듯이 얇은 파자마바지를 입고는 양말도 신지않은 맨발에 허름한 찌그러진 구두짝을 신고 아래웃니가 마주쳐 소리가 딱딱 날 정도로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였습니다. 순간 나그네는 어떻게 할까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어느나라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가게의 주인이 그런 사람이 가게에 얼쩡거리게 되면 가게의 이미지를 버리게 되고 또 손님들이 싫어해서 손님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절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나그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게안에 들어와 언몸이라도 잠깐 덥히고서 갈곳으로 가라고 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고 해서
우선 생각난 것이 뜨거운 물이라도 한 컵 주어서 찬 몸이라도 좀 덥게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 한 컵을 커핏잔에 담아서 바같에서 꽁초를 열심히 빨고있는 사내에게 드리밀어 주고는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마침 그 때 나그네가 식사용으로 이미 뜨거운 물을 부어놓은 컵라면 하나가 보여서 우선 이것이라도 이 사내에게 주고보자는 순수한 자비심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그 컵라면을 가져다 주니 이 사내는 그래도 자신에게 자그마한 동정이라도 베풀어주는 나그네의 태도에 용기를 얻었는지 잠시 동안 안에서 몸을 좀 녹히고 가면 안될까요?하고 물어보는 것이였습니다.
사실은 가게 안에는 보안카메라가 24시간 돌고 있고 또 그 사내가 가게 안에서 있는 동안 다른 손님이라도 들어와 그를 보면 분명히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선은 불쌍한 사내를 이렇게라도 돕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는 그 사내를 가게 안으로 들였습니다.
당연히 그 사내에게서는 말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홈리스로 있으며 목욕을 했을리가 없었을테니까요.
그 사내는 얼씨구나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커피 한잔 하면 안되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커피정도야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어떨가 싶어서 한잔의 커피를 그 사내에게 나그네는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그네는 정말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나그네의 대장이 가까스로 큰맘먹고 별르고 별러서 사준 그날 처음으로 입고 나온 두꺼운 방한 자켓을 저 사내에게 과연 주어도 될까 안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된 것입니다.
빠듯한 살림에 벼르고 별러서 장만해 준 것인데 이렇게 무모하게 홈리스 사내에게 주어버리고 집에 들어가면 그 곤욕을 어떻게 당해야 될 것인지. 그러면서 그까짓 자켓하나를 내가 그에게 준다고 그의 추위가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닐터이고 그 어떤 근본책도 못되는 알량한 즉흥적인 선심으로 문제가 해결이 될까하는 “악마의 속사귐”이 연방 귀에 들렸습니다.
나그네가 남모르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그 사내는 가게 한구석에서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어느 틈에 다 마시고는 이제는 좀 살 것 같은 표정으로 ‘좀이 녹는대로 금방 나갈께요”라고 몇번이고 얘기를 했다. 한참을 있다가 그 사내는 연방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아직 먹지 않은 컵라면을 비닐봉지에 소중한 듯 싸서 담고는 가게문을 나섰습니다.
그 때까지도 나그네는 그 사내에게 자신의 자켓을 주지 못하고 속으로만 갈등을 계속하다가 그 사내가 가게문을 나서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미안하긴 하지만 난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얘긴 줄도 모르게 몇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결국은 나그네의 자비의 등불은 자켓한장으로 조금 불을 밝히려 하다가 꺼져버린 꼴이였습니다. 그럴 정도의 자비행이라면 애초에 발심조차 하지않았다면 더 나은 게 아니였을까하고 나그네는 두고두고 후회를 했습니다. 하지만 나그네는 그 홈리스 사 내를 다시 찾아서 자신의 자켓을 주어야겠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나그네는 자신의 그림자를 찾으려면 몇 겁의 세월은 더 지나야 될 것이라고 스 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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