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학년 오후반
오월이 가는 마지막 날, 나는 50대의 분수령을 넘어 60대를 향해 또 다시 달려가야만 하나 보다.
생일날 연중행사처럼 지나온 인생 오늘도 되 삭임을 해 본다. 6. 25동란 발발 1년 전에 지금의 연세대학교 앞 쌍 굴다리 옆 문간방에서 산파의 도움 마저 없이 태어나 전쟁 중에는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는 아버지의 인민재판에 업혀 서 갔다가 인민군 여자 군관을 졸라 찐 옥수수를 얻어 먹었고 일사 후퇴 당시 부산으 로 피난 가는 배에서는 미군 병사에게는 닭다리를 얻어 먹는 기구한(?) 유년기였다고 나 할까. 환도 후 기억의 시대에 돌입하여 50년대 말까지 국민학교 학생으로서 60년 대 군사 정부 하에서는 혁명공약과 함께 중고등학교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갑작스러 운 국민교육헌장 제정과 바뀌어진 입시제도는 재수생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 했었다. 수 차례 낙방 끝에 겨우 들어간 대학 생활은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것이었지 만 자유분방하고 나름대로 낭만과 활로를 찾으려고 애만 썼던 시절이 아닌가 생각된 다. 대학 졸업과 소위 임관 그리고 사회진출과 더불어 들어 닥친 2차의 에너지 파동 은 나를 처음부터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고도 경제성장의 덕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고 어느새 사오정 세대의 후미로 밀려버린 것 이 우리의 신세가 아니던가.
화려한 청춘 보다는 우아한 장년의 시대를 주장하는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아 전인수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보다는 치아가 빠지 는 것에 더 관대하다. 대머리 친구들이여 너무 분개하지 말게나. 아직도 내면의 충실 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각 방 쓴지 3년이 넘었다는 남성의 비애를 호소하는 친구들이 비일비재하며 마나님들 또 한 갱년기의 제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관적으로 본다면 아마도 저 세 상으로 떠나가는 날까지 아플 일만 남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적 비교 우위를 찾아 내고 그를 극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지난 주 백내장 수술을 하여 광명을 되 찾았고 집 사람 또한 여성으로서 정규 코스를 하나하나 거치고 있다. 부부 공히 수술 전 불안감이야 이루 말할 수는 없지만 시대 적응으로 슬기롭게 받아드려 가고 있고 주변의 도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바람이 있다면 자신감의 연장과 의지력 박약의 연 착륙을 기대할 뿐이다.
계절의 여왕 오월의 찬란함은 이제 오늘로 막을 내리나 보다. 가정의 달, 청소년의 달 신록이 우거지는 달 등 참으로 미사여구를 많이 대동하는 5월이지만 피와 혁명으로 얼룩진 오명의 달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5월은 우리네 인생과 같아 다시 붙잡을 수도 없지만 아쉬워한들 무었하리. 내일은 또 다른 희망의 태양이 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다가오는 찬란한 6월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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