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색소폰 라이브카페
유철진 (한국산업안전공단 서울본부장)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60부터라고. 대학 졸업하고 30여년 동안 오로지 직장생활 만 해온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있다니?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고 믿어지지 않는다. 나를 아는 많은 친구들이 “유철진” 하면 오로지 공부만(그것도 영어, 수학, 과학 등 학 과공부에 한정하여) 할 줄 알고, 사회성과 융통성이 없어 선생이나 공무원이나 하라 면 할까, 사업과는 그것도 서비스 사업과는 전혀 적성이 맞지 않는 인간으로 알고 있 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왔으니, 충주비료, 호남에틸렌, 현대정유 그리고 현재 의 한국산업안전공단 에 이르기까지 국영기업체, 정부산하기관, 민간기업이라도 “갑” 입장에 있는 대기업이며, 직장 내에서도 생산부, 기술부, 연구소 등에서만 일했 으니 경리, 판매, 영업 등 고객과 직접 부딪치고 그들의 비위에 맞춰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월급걱정 전혀 없는 양지에서만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마지막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은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와 관련하여 사고조사, 안전점검, 안전진단, 압력용기 등 검사, 유해위험 방지계획서 심사, 18001 안전보건인증업무 등 비록 검찰이나 경찰처럼 사법기관은 아 니지만, 법 대신에 기술로써 대한민국의 근로자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을 감독(공사중 지, 조업중단, 사업장 폐쇄 등)할 수 있는 기관이니 남 앞에서 고개숙이는 것 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겠다. 이런 내가 3년전 어느날 지하철 역사를 우연히 지나다가 “매혹의 소리 색소폰을 배웁 시다” 라는 광고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색소폰을 만져본 것이 그만 색소폰의 매 력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다. 실력이 아직 미천하면서도 무조건 거리에 나가 색소폰 을 꺼내어 불다 보니 배짱과 자신이 생겼다. 금년에도 여의도공원, 한강고수분지, 영 등포공원, 신도림역 등지에서 주민이 시끄럽다고 신고를 하여 경찰이 말리던 전혀 개 의치 않고, 한번 나가면 혼자서 최소한 4시간 이상 논스탑으로 뽕짝, 포크송, 팝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100곡 이상씩 불어 제꼈다. 그리고 오브리로 최소 1000원부터 10 만원짜리 수표까지 나갈 때마다 몇 만원 씩 짭짤한 수입도 올려 왔다. 그래서 내년에는 아예 차량 뒤에다 노래방기기, 앰프, 발전기를 장착하고, 봄, 가을에 는 설악산, 오대산 같은 유명관광지, 여름 휴가철에는 경포대부터 해운대, 대천 해수 욕장까지 색소폰 유랑극단을 구상하기까지 하였다. (내 차량은 96년형 프라이드 밴 스 틱 똥차로 차 값은 30만원도 안되나, 악기만큼은 1000만원을 호가하는 아메리칸 셀마 마크 6로 한국에서 10번 째 안에 드는 명품, 즉 “색소폰의 고려청자”라고 자부할 수 있 다.) 그런데 이 착상이 오버스피드 하여, 아예 내가 언제나 연주할 수 있고 마음대로 주무 룰 수 있으며, 돈까지도 벌 수 있는 색소폰 전용 라이브카페를 차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실 미술가가 자신의 아뜰리에를 꿈꾸듯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만의 스테이지를 가져보고 싶은 것이 소망인 바, 나 자신도 정년퇴직 후 언젠가는 노 후대책 겸 여가생활을 위하여, 또한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 뮤직카페를 가지고 싶었 다. 얼마 전 김춘상 군이 말했듯이 준비된 대통령은 물론, 준비된 이별, 준비된 퇴직, 준비 된 노후, 죽음마저도 준비된 죽음이 필요하듯이, 퇴직 후 어느 날 갑자기 준비없이 시 작하는 것 보다 아직 정년이 3년 남았지만 지금부터 서서히 알아보고 사업을 구상하 는 준비단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시간나는대로 입지부터라도 물색하고 있었던 중이 었다. 때마침 2호선 구로디지탈단지 역 부근에 마땅한 조건의 매물이 나와 주변시세와 입 지조건들을 알아보고, 때로는 중개업자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 발품을 팔아가면서 사 전 타당성 조사를 하였다. 우선 장소로 왜 하필 구로디지탈단지 역이냐 하는 것이다.
첫째로 집과 직장으로부터 거리가 가깝고, 내가 잘 알고 있고 자주 놀던 동네인 것이 다. 둘째, 강남에 비해 보증금, 권리금 등 초기투자비용이 저렴하다. 셋째, 지하철 2호선 환승역이며, 유동인구가 아주 많다. 구로디지탈단지 역은 지하철 2호선 순환선에 위치, 강남, 잠실, 강북, 영등포 등 시내 어느 곳에서도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30분 이내 도달할 수 있으며, 수원, 안양, 광명, 시흥 등지로 가는 길목의 전철과 버스 연계 환승역이다. (같은 환승역이라도 신도림, 교대, 잠실 같은 환승역은 지하철 대 지하철 환승이므로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 고 역사 내부만 혼잡할 뿐이다.) 넷째, 날로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단지가 배후에 있다. 구로공단이 예전의 굴뚝공장형 공단이 아니라 수천개, 수만개의 벤처 기업이 모여 있 는 빌딩사무실형 단지이며, 한번 와 본 사람은 구로공단일대가 천지개벽을 하고 있는 중이란 것을 대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게다가 구로디지탈단지역 앞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무도장을 비롯하여 대형무도장이 세 군데나 있어서, 중년남녀들에게 소위 말하는 “작업”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 (이 무도장은 500평 플로어에 하루 1500명이 지루박, 부루스 등 사교댄스와 자이브 등 스포츠댄스를 추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사 교계에서는 “춤추려면 구로공단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과거엔 신사동이 중심이었으 나 지금은 구로공단이 “춤꾼들의 메카”이며, 동네 사람들보다 강남아줌마, 잠실아줌 마, 심지어는 분당아줌마까지 장안의 각처에서 유한부인들과 한량들이 모여들고 있 다.) 따라서 원래 카페 이름은 “째즈 라이브 바”이지만 상호를 “7080 색소폰 라이브”로 바 꾼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거리 문화가 10대, 20대 중심이고 40대, 50대 즉 7080세대들은 시내 에서는 도통 갈만한 곳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KBS 1TV 토요일밤 배철 수의 “7080 콘서트” 프로그램을 보고 4,50대 아줌마들의 열기를 한번 느껴보시라) 그 렇다고 미사리는 너무 멀고 무엇보다 대중교통이 없어 자동차가 아니면 접근이 어렵 고,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실 수 없다. 아무리 음악이 좋아 뮤지카페를 해도 사업인 이상 수익이 나야하고, 그러러면 술을 팔 아야 하는데, 시내 어디에서나 30분이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있다는 것은 매 우 큰 이점이아닐 수 없다. 마침 내가 회원으로 있는 색소폰동호회에는 공군군악대출신과 서라벌예대 출신등 상 당한 수준의 회원들이 다수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이 사업에 함께 투자하여 동참 중 이므로 색소폰 주자 확보와 공연 스케쥴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리고 7080 이 의미하는 그대로 그 시대의 포크송, 발라드, 올드팝송, 영화음악, 대중 가요를 중심으로 연주하고, 시끄러운 하드록, 댄스뮤직, 랩뮤직이나 난해한 째즈음악 은 사양하고 있다. 엘비스프레슬리, 비틀즈, 나훈아, 패티킴, 조영남, 조용필, 최진희 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환영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직장생활만, 그것도 편한 자리만 있어봤지, 아무리 규모가 작더 라도 사업을 한번 시작하려니 경험이 전무하고 처음부터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투자자금 확보, 부족자금 신용융자, 상가 권리금 흥정, 위생교육과 영업신고, 사업자 등록, 보건증 발급, 네온사인간판 제작, 맥주 및 양주 정보, 신용카드 조회기 설치, 주류통장 과 주류유통회사 관계, 무자료 주류문제, 세무관계, 보험 등, 무엇보다도 월급을 주어 야 하는 종업원 확보 문제, 주방장과 알바 인력구하기 등 사람관리 문제가 생각대로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경험있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창업에 관한 책을 수십권 보아가면서 우 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10일 오픈하면서 드디어 내 자신의 사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은 전혀 가족의 도움 없이(아직도 가족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음) 나 혼 자 힘으로 해결하였다 같은 사장이라도 나는 이제부터 월급쟁이 고용사장이 아니라 독립된 사장이다.
직장에서는 국장지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 나를 사장이라 부르니 기분이 나쁘지 않 다. 와이프와 숨바꼭질 하면서 수없이 부부싸움 하면서 재미삼아 배워 둔 사교댄스 와 색 소폰 취미가 그냥 취미로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노후대책 겸 사업으로 연결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학창시절 체육과목과 음악과목 콤플렉스를 이제야 극복하는가 보다. 세상 살다보니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돈과 명예도 전부가 아니다. 나는 2005년초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0.01초 차이로 목숨을 건지고 병 신이 안되었다.) 인생에서 건강이 첫째이며, 자기 하는 일이 즐거우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니더냐? 유철진이 술집 차렸다고 타락했다고 무어라고 말한들, 내가 좋으면 그만이 아니냐?
상호: 7080 색소폰 라이브카페 (전화 854-1156)
위치: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탈단지 역 1번 출구 2분 거리 (시흥대로 변 서울제노병원 앞)
규모: 60평(실평수) 좌석 80석 메뉴: 양주 및 세계맥주(생맥주는 취급안함) 공연: 전속 색소폰 주자 매일 매시간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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