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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다운 결혼식 이야기

조회 수 27231 추천 수 0 2011.03.10 14:14:06



 

조카의 결혼식

- 한 아름다운 결혼식 이야기-

 

     조카가 미국에서 결혼한다고 했다. 고명아들인 녀석은 대학을 입학하고는 바로 유학을 가겠다고 떼를 써서 미국으로 가더니, 졸업 때가 되니 현지에서 사귄 여자와 결혼하겠다며 처형부부에게 들이민 것이다. 신붓감은 녀석의 대학 동창으로, 젖먹이 때 북유럽계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한국계 학생이란다. 이를, 처음에는 고심하던 처형부부가 ‘자식 이기는 장사 없다’고 체념하며 받아들인 것이다.

 

   결혼이 결정되니 처가 형제들이 당혹스러워졌다. 결혼식에 참석하기에 어마어마한 교통비도 그렇지만, 작게 잡아도 일주일은 필요할 짬을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철부지 조카 녀석의 분별없는 돌출행동을 탓하는 회의감도 일었다. 그래도, 결국은 여섯 형제 모두 부부 동반하여 이 결혼식에 참석하자고 결정을 했다. 이 기회에 함께 미국여행이나 해 보자는 것이었지만, 외아들을 해외에서 여의는 처형부부의 허전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형제애가 더 컷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 아름다운 결혼식의 증인이 되었다.  

 

  결혼식장은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국제공항에서 차로 5시간 거리의 시골마을의 작은 루터교회이다. 몇 분은 달려야 다음 농가 한 채가 나타나곤 하는 미국 중북부 농촌지역의 작은 교회이다. 서둘러 식장에 일찍 도착한 우리 일행은 교회 마당의 그네의자와 벤치에 앉아 시원스레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풍광을 즐기며 기다렸다.  예식시간이 가까워 오니, 차량이 줄지어 교회마당으로 들어서고, 그에서 내린 깔끔한 차림의 하객들이 유쾌한 얼굴로 다가와 먼 나라에서 날아온 신랑측 사절들을 환영하고 고마워한다.

 

  드디어, 교회 현관문이 열리고, 정장과 드레스 차림의 선남선녀 들러리 3 쌍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하객들을 맞는다. 그들은 춤추듯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와, 선남은 여자하객을, 선녀는 남자하객을. 사뿐이 팔을 끼고, 마치 웨딩스텝을 밟듯 정중한 걸음거리로 좌석까지 안내한다.  그들은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라고 했다. 결혼식 들러리라면 꽃바구니나 들고 서있는 어린 소녀로, 신랑신부 친구라면 결혼식 전후의 마치 훼방꾼같이 수선을 피우는 악동으로나 기억하는 나에게, 이 해프닝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나는 키가 훤칠한 벽안의 처녀에 이끌리며 마치 내가 이 결혼식의 주인공이기나 한 것 같은 아득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루터교 신부가 집전한 결혼예배 후, 하객들은 다과회장으로 안내 되었다. 집에서 만든 머핀들과 케이크를 제외하면. 스낵 수준인 다과들은 교회 청년회 친교모임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활기 있는 대화와 하객들의 정담으로 분위기는 어느 곳보다 풍요로웠다. 결혼식은 그렇게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오후에 우리들은 신부집에 초대 되었다. 가까운 친지와 이웃들을 위한 가든파티였다. 신부측 여인들은 음식 준비를 하고, 초대 받은 이웃들이 도착하기 전, 우리는 벌새들이 윙윙 날아다니는 고즈넉하고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신부 측 남자 어른과 담소 시간을 가졌다. 양가의 때늦은 상견례인 셈이다. 집에 딸린 200 에이커 규모 농장의 주인이며, 회계사 일을 하는 양어머니와 함께 신부를 키워온 외할아버지가 신부를 이야기 한다.  젓먹이 입양손녀를 처음 안았을 때의 기쁨, 성장과정 마디마디에서 느꼈던 행복감등을 지긋이 미소를 머금고 회고 하는 동안, 우리는, 인종조차 다른 입양아에 대한 이들의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며, 그때까지도 마음 한편에 어른거리던 편견의 찌꺼기를 씻어 내야 했었다.

 

   식사 후에 가족, 친지, 이웃들이 둘러 앉아 하던 결혼선물 공개 행사는 소박하고 담백했다. 대부분 손수 만든 수제품들인 작은 선물들이다. 신부가 보내온 분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선물포장을 풀어 모두에게 돌려 보이면, 좌중에는 탄성과 덕담의 릴레이가 이어 지고, 신부 옆에는 어린소녀가, 주위를 아랑곳 않고, 다소곳이 앉아 뜯겨진 선물 포장지를 곱게 접어 차곡차곡 옆에 개켜 놓는다. 이런 모습 앞에서 누가 감히 미국을 전통 가족제도가 몰락한 타락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게 경건하고 상큼한 행사였다.

  다시, 자리는 마을 회관으로 이어졌다. 허름한 1층 홀에 밴드가 초빙된 소박한 댄스파티이다. 음료는 각자가 한 구석의 스낵 부츠에서 구입하여 마시며, 신랑 신부의 춤을 시작으로, 남녀노소가 어울려 짝을 맞추어 춤을 춘다. 이 흥겨운 축제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우리는 이른 새벽길을 달려 귀국길에 올랐다.  잠 덜 깬 노루들이 때늦게 화들짝 놀라 도망가곤 하는 텅빈 도로를 달리며, 나는 속으로 이 특별한 여정을 결산해 보았다.

" 대단하다!  지금, 아무도 적지않은 결혼식 참가비용을, 조카며느리가 입양아라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오직, 그녀가 우리의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기뻐하고, 결혼식과 그녀를 키워준 사람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에 취해만 있으니 말이다.' (2003년) 


하현룡

2011.03.16 10:35:34
*.49.102.68

아름다움을 훌륭하게 담아내는 종찬이의 글에 가슴이 따뜻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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