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해가 지기 전이었으나 밥의 도시로서의 모습을 조금 은 느낄 수가 있어 도시의 규모는 상당히 큰 것 같았다. 밤이면 더욱 하려할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먼저 시내 관광을 하였다. 베네치아를 실내에 옮겨놓은 쇼핑몰로 거 대한 돔에 하늘을 그려 마치 맑은 하늘을 보는 것 같이 만들어 놓았다. 미리 알고 보면 서도 너무 자연스러워 잠깐 착각을 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안에는 수로를 만들어 배도 다니며 마치 베네치아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그 런 곳이었으며 거리 공연도 있고 수많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있는 곳이었다. 약속 한 시간에 같은 버스의 일행이 한 사람 처지는 바람에 가이드와 따로 택시로 식당으 로 오는 작은 일탈도 있었다. 일행은 저녁의 관관을 위하여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었다. 며칠 우리 음식을 먹지 못 한 탓에 모처럼의 한식이 훌륭한 규모나 맛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입에 달라붙었다. 김 치찌개 된장찌개 꽁치구이에 나물 무침 등의 소박한 찬이었으나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저녁이었다. 거기다가 금상첨화는 우리나라 소주를 반주로 마셨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의 값은 내가 직접 산 것이 아니라 알 수 없지만 이 음식점에서의 소주 값은 한 병에 7달러이 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먹는 소주 값으로는 별로 비싸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 다. 식사 후에 숙소에 들게 되었는데 같은 버스의 다른 일행과 다른 호텔에 머무르게 되 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조금 급이 높은 호텔이라는 것이 후에 밝혀진 사실이다. 각 자 방에다 짐을 풀고 다시 버스에 집합을 하여 시내 관광과 쇼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버스 운전사의 실수로 일행이 크게 다칠 뻔 한 일이 생겼으며 우리 일행 으로 하여금 몹시 화나게 하는 언사를 사용하여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그러나 좋게 해결이 되었으며 잘은 모르나 특히 법 없이도 잘 살 바른생활 우리 동문으로 법대로 살고 법 덕분에 살고 있는 법대 교수 김 학동 동문의 중재내지는 운전사에 대한 준엄 한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숙소를 출발해서 처음은 Jubilee쇼를 감상했는데 규모가 상당히 크며 장면의 전환이 아주 자연스럽고 과연 세계적인 쇼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스무 명에 가까운 몸매 착한 여성들의 스무 쌍에 알 젖통을 감상한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 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아주 잘 볼 수가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전부 자연산이라고 했 으나 내가 보기에 누워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무희의 가슴이 변화가 없는 것을 보아 아 주 몸매가 탄탄하거나 아니면 의사의 손을 빌린 것으로 판단되었다. 쇼 구경을 마치고 분수 쇼 등을 보면서 시내 야간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항상 전과 동으로 몇 사람이 한방에 모여서 그 동안 남겨 놓았던 와인으로 미국에서 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였다. 다시 한번 멀리서 동문을 위하여 와인을 제공한 강균 동 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글을 쓴다. 12병이 들어있는 와인을 다섯 상자나 가지고 왔 다니 정말 고맙고 그 중에 한 상자 이상은 내가 먹었으니 이렇게 감사의 글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보답일 것이다.
5월 15일 목요일 우리여행의 마지막 날로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다시 시작된 사막으로의 끝없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먼저 여행이 시작 되었을 때 멀리서 보면서 지나간 민속촌 Calico 에서 예전의 서부 영화에 나오는 거리를 보았다. 실제로 우리의 미속 촌과 같이 생활 을 하는 공간 같이 꾸며놓고 서부의 총잡이부터 그 시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산촌으로 예전에 광산이었던 마을이 생산 활동을 멈춘 후에 폐광으로 있던 곳을 개 발 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폐광이던 시절 사람도 살지 않고 쓸쓸한 곳이라 Ghost Town 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나는 잠시 마을 둘러보고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그려 본 후에 화살촉과 유리 공예 등 몇 가지 특이한 물건을 샀다. 그리고 미국에서 합류한 여행사의 일행 중에 몇 사람하 고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하면서 여유를 가졌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서 먹한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으니 조금 일찍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더욱 다양한 사람들 의 생활을 알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을 떠나서 다음은 먼저 지나면 서 점심을 먹은 바스토우의 한국음식점에서 비빔밥 점심을 먹고 다시 우리가 처음 출 발한 역순으로 일행들을 내려주면서 돌아왔다. 짧은 3박 4일의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그 동안 그림으로나 보던 미국의 모습을 직 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구나 나는 2번째로 오는 본토 구경에 서부로 오는 것은 처 음이라 무척 설래 이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지나고 나니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 았던 여행이었다. 같이 다니던 익숙한 친구들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서먹한 것도 있었고 또 여행 중에 내가 쉽게 함부로 말을 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한 동문들도 있었다. 다시 이 지면을 빌 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혹 불편했던 일 화나게 했던 말들은 나의 진심이 아니니 부 디 잊어주기 바란다. 미국 여행의 마지막인 저녁을 먹었던 곳은 아마 무슨 순두부집 인가였는데 상호는 기 억이 나지 않고 일행이 먹었던 도가니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 젊지 않은 나이의 여행 이라 혹 무릎이 상했을 까봐 여서였는지 도가니를 시켜주었는데 상당히 맛있게 먹었 고 술 또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찌게도 있었는데 술을 먹으면서 조금씩 판단력과 기 억력이 약해지면서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국여행에서 기억나는 여러 가지 추억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일정 동안 나와 같이 방을 사용한 우리의 사무총장에 관한 것이다. 지금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것 으로 녀석의 머리 속에는 동창회와 골프 외에는 다른 생각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다. 거의 90% 이상의 행동과 말은 골프와 동창회 일이니 집에서는 안식구에게 구박 꽤나 받을 것 같다. 친구들의 대부분은 40여년이 지나고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 사이의 세월이 어느 틈에 없어지고 예전에 경희궁에서 놀던 까까머리로 돌아가 쉽게 친숙해지는 것이 동창인 것 같았다. 정말 멀리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을 텐데도 기꺼이 모여서 즐 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동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번에 미국에서 준비를 하 고 서울에서 간 친구들과 끝까지 함께하면서 즐겁게 놀아준 정 무진 동문에게는 고맙 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사를 드린다. 특히 마지막 공항까지 차로 태워주고 배웅해준 장 석원 동문에게 “야 녀석아 정말로 너무나 고마웠다.” 졸업하고 우연히 한번 만난 후에 많은 시간이 지나서 만났으나 그대로 여전히 변함없는 너이기에 이런 말로 나의 마음을 대신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또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문득 거기 미국에서의 일들을 생각하면 절로 얼굴에 웃음이 머금어지는 그런 좋은 추억이 되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좋은 추억으로 남아 미처 예상을 하지 못하고 시작한 기행문이 다시 한번 나를 미국으 로 데리고 가기도 하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렇게 쓸 계획이 없어서 메모를 못한 나 의 불찰을 용서하시고 혹 여기에 쓴 글이 틀린 부분이나 추가할 부분이 있으면 나의 메일 eppeen@hanmail.net으로 보내주시면 고쳐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끝으로 변변치 못한 글로 그것도 빨리 올리지 못한 나에게 그래도 격려를 보내준 친 구들 고맙다 사랑 한다 우리 동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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