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일요일 미국은 어머니날이라는 일요일 숙소를 출발한 우리 팀은 2시간이 넘게 걸리는 San Diego에서 관광으로 Sea World에서 범고래쇼와 물개들이 나오는 짧은 쇼를 보고 어제 보다는 조금 나은 점심을 먹었다. 내 경우는 어린 돼지 갈비를 먹었는데 어제의 치킨 보다 훨씬 맛있는 것은 좋았으나 간이 너무 짜서 계속 물이 먹히는 것이 단점이었다. 미국에서의 외식은 거의 대부분 우리 입에는 짜서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서든 물을 많 이 먹게 되었다. 물길을 따라 배를 타는 코스는 어제의 경험상 물벼락을 예상하고 나는 끼지를 않았는 데 타고 온 사람들은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예 전의 스페인 마을을 재연한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같은 옛 마을을 구경하였다. 미국 역 사의 일부분이지만 멕시코와의 전쟁으로부터 거의 강제로 빼앗으면서 넓힌 땅을 보 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가톨릭이 들어온 곳이라는 이야기는 더욱 나에게 큰 의미 로 다가왔다. 예전의 마을 구조와 한가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의 모습이 예전의 평화로 웠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하였다. 느리게 걸으면서 마을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 고 새로 지은 성당도 들어가 보았다. 휴일이고 어머니날이라서 길이 많이 붐비리라는 예상을 하고 조금 일찍 출발을 했는 데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아서 약속된 시간에 저녁식사 장소에 도착을 하였다. 중국식 의 식당으로 이름은 용궁이었다. 아마도 6시경 이라고 생각되는데 삼삼오오 모여서 시작한 저녁은 골프 조와 합류하 여 떠들썩하게 중국술로 분위기가 고조 되었다. 더구나 최 만성 동문의 홀인원은 이 번 모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벤트가 되었으니 저녁을 먹고 나서 노래방은 최 만성 동 문의 몫이었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 갈수 있는 큰 노래방이 이국 땅 미국에 있다 는 것에 놀라며 우리는 한반에 모여서 다시 한번 노래 실력을 뽐내었다. 며칠 동안의 노래방 대결의 결론은 미국에 있는 동문들의 실력이 우리나라에서 간 동문 보다 출중 하다는 것이었다. 고국을 떠나서 조금은 외로웠을 마음을 노래로 달랜 결과가 이런 결 론으로 나왔다고 생각을 했다. 끝난 시간은 거의 기억이 없고 누군가의 차를 타고 숙소에 왔는데 그 마저도 지금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여간 나를 태워준 동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렇게 LA에서의 동문들과의 만남의 시간은 마무리를 하고 다음날부터는 미국의 동 문 몇과 그랜드개년과 라스베가스 관광을 하게 되었다.
5월 12일 월요일 우리일행 23명과 여행사에서 합친 20명이 떠나는 3박4일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여행 사의 각지점이 있는 곳에서 두세 명씩 합류한 사람을 전부 태우고 출발을 한 것은 거 의 10시가 다 되었던 것 같다. 모하비 사막을 달리는 버스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서 보아도 거의 똑 같 은 모습을 하고 있는 끝이 없는 것 같은 곳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2시간 이 넘어서 철도의 중심지로서 발전했다는 바스토우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 심 식사 후 말도 안 되는 비누선전을 듣고 다시 오전과 같은 달리기를 계속한 버스는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여유 외에는 거의 비슷한 경치를 보면서 사막을 달 렸다. 멀리 기차가 가끔 보였는데 화물차로 100칸 정도를 이어서 달리니 뱀 같이 구불거리 면서 달리는 것이 드물게 보는 장관이었다. 더구나 양쪽에서 만나는 모습을 멀리서 보 면 길이가 너무 길어서 그 모습이 지평선을 기차로 꽉 채워놓은 것 같았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우리의 목적지인 콜로라도 강변의 휴 양도시라는 라풀린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콜로라도 강변에 호텔로 도박장이 있는 호텔이었다. 저녁 식사는 양식 뷔페 로 먹고 강변에서 저녁 늦은 시간까지 강 균 동문이 협찬한 와인을 마시면서 그 동안 의 지난 이야기와 옛날의 추억들을 기억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강변의 뱃놀 이 모습을 보면서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커다란 잉어들이 여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즉시 잡아먹으려고 덤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의 기상과 이동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후에 믿거나 말거나 김 영동문은 카지노에서 재미를 보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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