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총동창회 지부동호회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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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과 평화공원

 

                                                                                                       김 풍오

 

  지난 5월말 일본 큐수 지방 여행을 다녀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

고 신문 하나 읽고 나니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들렸다. 한 시간

남짓 날았으니 시간적으로 따지면 제주도에 가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후쿠오

카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어 안내문이 눈에 뜨였고 한국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니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낯설은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어로 쓰여진

안내문도 읽을 수 있으니 이것도 일조 하였을 것이다.

  나가사키행 기차를 타려면 하카다역으로 가야한다. 관광안내 부스로 가서 안내원

에게 물었다. 지난 일 년 간 배운 일본말을 처음으로 써먹었다. 전형적인 일본 여자

의 모습에 제복을 단아하게 입은 안내원은 말했다. 국내 항공선으로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서 하카다역으로 가는 전철을 타라고 말이다. 하카다역에서 JR특급

카모메에 몸을 실었다. 빠르고 쾌적한 열차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일본 시골 풍

경을 감상하면서 두 시간 남짓 가니 어느새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았다.

때 열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선율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 저것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에서 나오는 어떤 개인 날이 아닌가. ‘나비부인의 배경이 나가

사키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저녁 8시 가까이 되었다.

번을 물어 호텔에 도착했다. 물어볼 때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과 성실성이 첫날부터 깊이 느껴졌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먹을 음식점을 찾았으나 주위에 그럴듯한 곳은 보이지

않고 작은 선술집이 몇 군데 보였다. 그중의 한 집에 들어가니 몇 사람이 음식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짬봉이

. 나는 이름만 듣던 나가사키 짬봉을 시켰다. 우유빛 나는 걸쭉한 국물에 여러 가

지 해산물과 야채가 듬뿍 들어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김치나 단무지 같

은 것은 없으나 짬봉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사키역으로 가서 하우스텐보스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하우

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네덜란드어로 숲 속의 집이라는 뜻인데 1992년에

완성된 놀이공원이다. 이색적인 유럽풍의 건물과 각종 시설물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꾸며진 느낌이 많이 들어 큰 감흥을 가질 수는 없었다.

둘러 구경을 끝내고 나가사키로 돌아왔다.

 

   오후에 그라바엔과 오란다자카를 둘러보았다. 일본에서 제일 일본답지 않은 도시가

나가사키라고 하는데 절로 수긍이 간다. 그라바엔은 아름다운 언덕길에 위치한 서

양인들이 거주했던 여러 저택을 하나로 묶어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이다. 저택의 방

에는 당시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주인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

유럽 스타일의 벽돌 타일이 깔린 오란다자카 언덕의 주변에는 오래된 서양식 건물에서

이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포르투갈의 배는 1543년 나가사키에 처음으로 들어와 조총과 기독교를 전했다.

이어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의 배들이 들어와 교역을 시작하였다. 이 때의 포르투

갈인들이 미친 영향은 일본어에도 남아있다. 빵은 포르투갈어의 pão에서 나가사키

의 명품인 카스테라는 castelo에서 나왔으며 아리가도오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아리가도의 어원이 포르투갈어의 고맙다는 뜻인 오브리가도(obrigado)에서 나왔다

고 한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경제대국 일본을 만드

는데 나가사키는 큰 역할을 하였다.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며 일본 국민이 가장 존

경하는 정치인인 사카모토 료마가 외친 말이 있다.

나가사키를 열어 개항하는 것만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다.” 이처럼 나가사키는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이며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제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평화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차를 타고 갔다.

나가사키의 전차는 아주 예쁘다. 일본 내 다른 도시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전차를

이곳에 기증했는데, 각각의 특색을 살려 원형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

의 전차가 시내를 맵시 있게 달리고 있다. 마츠야마초(松山町) 정류장에 내려 얼마

안가 평화공원 입구가 나왔다. 입구는 새로이 설치되는 에스컬레이터 공사 중이라

 좀 어수선하였다. 계단을 올라가니 평화공원이 한눈에 펼쳐졌다. 공원의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제일 북쪽에 커다란 남자 청동상이 보인다.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도

눈에 띄고 일본 학생들이 기념사진 찍는 모습도 보인다. 우선 거대한 조각 앞에

다가갔다. 이름은 평화 기념상으로 제정된 높이 9.8m, 무게 30톤의 조각은 이 지역

출신의 조각가인 기타무라 세이보가 50년대 중반에 5년에 걸쳐 만든 것이란다.

하늘로 향해 올린 남자의 오른손은 원폭의 가공할 비극을 나타내고 옆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의미하며, 가볍게 감긴 눈은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이 거대한 조각이 아니라 이 기념물 앞쪽에 있는

분수와 연못이다. 이 분수와 연못은 원폭피해자로 숨진 어느 소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원폭이 떨어진 날에 기록한 이 소녀의 수기에서 따온 글이 분수

앞의 돌에 새겨져 있다. “목이 말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에는 기름 같은 것이

뒤덮여 떠 있었습니다. 참을 수 없이 물이 마시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기름이 떠

있는 물을 마셨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베트남전에서 네이팜탄으로 불바다가 된 마을을 벌거숭이로 뛰

쳐나와 울부짖는 어린 소녀의 사진이 떠올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어느 소녀

 이야기도 떠올랐다. 전쟁과 평화는 불과 물의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 소녀

들의 목마름은 평화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다. 지구촌 곳곳에서의 전쟁과 분쟁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한반도 긴장 상태 등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 정도는 다를지언정

목마름을 겪고 있다. 우리는 다만 기름이 섞여 있는지도 모르고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운명의 날, 194589일에 당시 세계 최대의 공군기지였던 티니안 섬에서 탑

재기와 관측기로 편성된 B29 두 대가 제1 공격 목표로 지정된 규수 북쪽의 고쿠라

(小倉)를 향해 출격했다. 고쿠라 상공은 심한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10여분 선회

비행을 하고 나도 구름이 걷히지 않자 비행기는 제2의 공격 목표인 나가사키로 향

했다. 구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원폭은 폭발 직후 6,000의 고열과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킨다. 이 고열과 충격

파로 인해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나가사키에서 투하된 원폭은 지상 500미터

상공에서 터지면서 가공할 엄청난 고열과 폭풍과 방사선으로 시내를 파괴하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이 원폭은 길이 3.5미터 직경 1.5미터 무게 4.5톤의 플루토늄

폭탄이었다. 이보다 3일 전에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폭탄에 비해 1.5배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는 15만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많은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병기를 만드는 병기창에는 예외 없이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는 희생의 표본이다. 원폭의 첫 번째 목표였던 고쿠라 대신 희생 당했다.

또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최후까지 미국과 싸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수 백만 일본인들과 수 만명의 미국군의 희생을 막은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가사키 시민들에게 경의와 함께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원자력 관련 업계에서 평생을 종사한 나로서는 이 비극의 현장을 보고나니 착잡

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만 되는가.

어떤 학자는 2차 대전이래 국지전은 있었지만 3차 대전이 안 일어난 것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였다. 핵폭탄이 전쟁 억지력을 발휘한

것이라는 것이다. 매우 역설적이긴 하지만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가 평화를 기원한다는 샬롬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얼마나 평화를 바라면 인사가 샬롬일까 생각케 한다. 호텔로 돌아와

텔레비젼을 켜니 원자력 관련 뉴스가 나왔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하여 모든 원전이 정지 상태에 있었는데,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일부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우진호

2013.08.10 04:52:39
*.169.167.2

원자력 공학도의 필력이 대단하다.

역사의 자취를 보며, 원자력 전문가의 감성적이고

동시에 지적인 표현 참 좋다.

언제 이 전자공학도도 풍오같이 필력을 겸비할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또 많이 써서 올려라.

선우 진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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