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 야유회는 두 그룹으로 나뉜다.
계족산 걷기와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을 돌아보는 그룹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에는 낙화암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부소산성이 있다.
65세 이상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대부분은 무료 입장이 싫은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간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북쪽에 위치한 해발 100m쯤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구릉이다.
북으로 백마강을 두르고 산이 막아선 형상이 북에서 내려오는 고구려 군사를 방비하게 되어 있으며,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추정되는 경기도 하남 위례성터와 함께 백제식 도성 방식을 보여 준다.
입구에서 올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삼충사라는 사당이 나오는데 백제 말의 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삼충사 옆 담장 그늘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의 얘기를 들어 본다.
산이라고 하지만 해발 1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덕으로 그 주변을 두르고 있는 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던 곳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날씨인지라 천천히 걸으면서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해보도록 한다.
삼충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동쪽을 향하고 있어 해맞이를 할 수 있는 영일루가 나오며,
그 뒤편으로는 곡식창고 자리였던 군창 터가 있다.
녹음이 이미 짙은지라 바람은 막히고 더운 날씨라 학여니는 오늘 땀 좀 흘릴 것 같다.
부소산성 가장 꼭대기의 사자루는 달을 바라보는 서편을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탁 트인 전망으로 부여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며 시원한 바람도 불어 온다.
잠시 걸터 앉아 담소를 나눈다.
내려오는 버스에서 철시기가 이미 소개한 시원한 알밤 막걸리 있는 휴게소이다.
부여 지역 특산물인 밤으로 빚은 막걸리인지라 밤 맛이 난다고 한다.
이미 주당들이 자리 잡고 앉아 알밤 막걸리를 음미하고 있다.
삼 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낙화암(落花岩)에는 백화정이 있다.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명이 투신하였다고 한다.
그 바위를 후세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군수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라는 뜻의 타사암이라고
하니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경을 마냥 즐기기에는 꽃다운 궁녀들이 스러져간 곳이라 슬픈 이야기이다.
조선 숙종때의 석벽 홍춘경은 이곳에 와서 낙화암에 비추어 백제의 스러짐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읊조렸다.
"나라가 망하니 산하도 옛 모습을 잃었고나
홀로 강에 멈추듯 비치는 저 달은 몇 번이나 차고 또 이즈러졌을꼬
낙화암 언덕엔 꽃이 피어 있거니
비바람도 그 해에 불어 다하지 못했구나"
고란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고란사 뒤편에는 한 번 먹을 때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유명한 약수가 있어 너도 나도 여러 모금을 마신다.
단체 기념 사진 찰칵~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준호는 맨발 걷기의 원조이며 뒤로 걷기에도 일가견이 있다. 요즘 탁구는 그에게 일상의 부분이라고 한다.
군살 하나 없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데, 이는 노력의 결과이다.
다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기다리고 있다.
선착장 뒤 편에는 양어장이 아닌데도 잉어과의 작은 물고기들이 물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선착장 실내는 조금 더 시원하다.
드디어 도착한 돛을 올린 유람선~
두 명의 주당과 함께한 유정한~
정하니는 아마도 오늘 동기 모임에 처음으로 나온 것이리라.
얼마전 한강 성심병원에서 정형외과의로 정년 퇴임을 하고 잘 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옆의 두 주당 주량은 누가 더 센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도토리 키 재기 이지만... ㅋㅋ
선착장을 뒤로 포물선을 그리며 종착지를 향한다.
유람선 선미의 한 때...
승객들이 낙화암을 바라 보고 있다.
백화정 아래에 있는 낙화암은 높이가 60미터 정도이다.
꽃다운 삼천 궁녀들이 아까운 젊음을 바친 곳이다... 아래 편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落花岩'이 보인다.
고교시절 유정하니 여동생이 김지미 미모와 미스코리아 저리 가라는 몸매를 갖고 있었는 데...
정한네 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친구들의 흑심을 정하니는 알고도 모른체 하였다고 한다.
희중이에게 당시 나에게 왜 귀뜸을 안해주었냐고 하니,
희중 왈 "나도 어찌해보려 노심초사하였는 데, 왜 알려 줘~" ㅎ~
지나간 일이지만 섭섭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현덕과 유 병돈 부부~
내려 오는 버스에서 병도니는 국민의 공적인 유병언을 대신하여
유씨 일원으로서 진정어린 사과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ㅋㅋ
난생 처음으로 부여와 낙화암을 잘 관광하였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어기야, 재미있게 읽었다... 그림만 잘 그린줄 알았더니, ㅋ ㅋ
읽은 후 가만이 생각하니, 어기가 삼천 궁녀 언급을 수 차례 한걸 보면,
그 많은 미녀들을 생각하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괴로워한건 아닌지, ㅎ ㅎ
창근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