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근성 동기를 추모하며 사진과 글 한편 올립니다. 글은 외부기고 용으로 쓴 것입니다. 손우현
(사진 설명: 작년 5월 경포대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박근성, 그 다음이 이승우, 우단은 이종달, 좌단이 나)
성
(
聖
)주간에 날라든 비보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성주간
(고난주간
)이다
. 지난
일요일 저녁 아내와 함께 미사를 보고 귀가해 저녁 식사를 한 후 서재에 앉아 있었다
. 친구
L로부터 전화가 왔다
. 머지 않아 만나기로 약속이 돼있는데 왠 일인가
. 혹시 와병 중이신 노모가 돌아가신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
그런데 이게 왠 청천벽력인가
? 내달 초 같이 만나기로 한
P가 별세했다는 문자를 동창회 총무로부터 받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냐는 것이었다
. 나는
우두망찰하여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보고 있던 컴퓨터를 끄고 전화기를 들었다
. 똑 같은 문자 메시지가
나에게도 와있었다
. 알아보니
P는 그날 가평 근처 축령산에서
있었던 동창회 산행에 참가했다가 갑자기 찾아온 흉통으로 쓰러져 헬리콥터로 후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했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 여러 친구가 유명을
달리 했지만
P의 돌연사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 P는
나의
50년 지기이자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가까워진 평생 친구다
. 그는
평소 산행을 즐겼다
. 비교적 건강했던 그의 죽음은 의외였다
. 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성경을 펼쳐 들었다
. 과거에 애독하던 개신교 성경에 다음과 같은 시편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 (As for man, his
days are like grass, he flourishes like a flower of the field; the wind blows
over it and it is gone, and its place remembers it no more.) (시편
103:15,16) 참으로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며 인생은 허망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육사를 졸업한
P는 동료와 부하들로부터 높은 신망과 존경을 받는 지휘관이었다
. 그의
사관학교 동기 회장인
K 장군은 영결식에서
P가 현역 부대장
시절 부대 주변의 노숙자들까지
보살피던 인정
많았던 전우라고 회고했다
. 그러나 관운이
따라 주지 않은 그는 군인의 길을 접고 조기 전역했다
. 그러나
그를 아끼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재취업하여
60세 이후까지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
P
는 자상한 가장이자 아버지요 할아버지였다
. 10여년전 파리문화원장으로 근무할 때 그는 파리에 유학하고 있던 딸을 잘 부탁한다며 서울로부터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해오곤 했다
. 나는 그의 딸과 또 함께 와 있던 부인을 위해 식사 대접을 한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해준 것이 없다
. 그런데도 그는 내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 그와 마찬가지로 무남독녀를 둔 나는 그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
그의 딸은 귀국
후 소아과 전문의인 훌륭한 청년과 결혼하여 부모를 기쁘게 해드렸다. 그런데 이게 또 왠 일인가. 그의 둘째 외손자가 출산 과정에서 뇌에 손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게 되었다
. 그는 일요일을 빼고 거의 매일 손주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운전수
’ 역할을 하게 됐다
. 불교 신자였던 그는 이게 자신의 업보일지 모른다면서 손자의 회복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늘 슬퍼했다
. 영결식에서 유족 대표 인사를 한 그의 사위는 ‘아들 겸 사위 올림
’이라고 하며 흐느꼈다
.
지난 화요일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P의 안장식에 참석했다
. 스님의 목탁 소리를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나 갔다
. 인생이란 과연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 인연은 무엇이고
, 가족은 무엇인가
, 왜 욕심과 집착은 이렇게 떨쳐 버리기 힘든 것일까
?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화두들이다
.
P
가 이승의 번뇌가 없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며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