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세계 곳곳에
계시는 벗님 분 들께
:
어제 하다가 중단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
청해진 터를 떠나 북쪽으로
조금 더 가니 세트장이 하나
더 있는데
,
이곳은 海神 장보고의
중국 배경 촬영 세트장 으로
옛 중국 도시를 잘 만들어
놓았더군요
.
완도교를 넘어 왼쪽으로는 두륜산을 보면서
55 번 도로를 따라 이제 다음 목적지 다산초당
으로 향하였습니다
. 나는 전에 남양주군 조안면에 있는 다산유적지를 가 본적이 있지만
이곳 강진에 있는 유적지는
처음입니다
. 다산은 이곳 강진에
18 년간 유배 생활을 하던
중
10 년간을 이 초당에서 지내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고 하는군요
. 주차장에 도착하니
기념관과 다산생활관이 있고
, 초당은 오른쪽길로
10 여분 가파르게 올라간 곳에 있었습
니다
.
원래 초가이었던 것이
1930 년대
무너져버려
, 1957 년 기와집으로
복원하였다 하는군요
. 초당과 함께
동암
, 서암
, 천일각 등도 복원 되었고
작은 연못과 차를 끌이던 넙적한 바위
,
藥泉 그리고 다산이 유배가 끝나고
돌아갈 때 丁石이라고 세겨놓은
바위는 옛 그대로 인것
같았습니다
.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강진만
바다가 바라보이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기념관에 들러 여러 물품과 설명영상을 보면서
,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유배로
18 년을 보내고 만 다산의 생을 보면
..... , 조선이
영
.정조의 부흥기를 맞았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100 년 후에 망하고 마는 역사가
안타까웠습니다
.
얼마 전
, 이 인화 님이 쓴
“영원한 제국
” 이라는 소설에서 가 정조가 독살당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어 놓았었지요
. 그리고 이 덕일 님이 쓴
“조선 왕 독살사건
” 이라는 책에는 정조
뿐 아니라 조선 왕 또는 세자가 여럿 독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요
. 사실이라면
,
더구나 정조의 죽음은 참으로 조선의 역사상 가장 큰 비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정조가
정약용과 함께
10 년만 더 정치를 하였었더라면
........ ! 또 쓸데없는 역사의 가정이군요
.
조금 더 북쪽으로 길을 따라가다가 차를 세우고 백련사라는 절로 갔습니다
. 다산은 이 절에
있던 혜장스님과 또 한 분
(이름이
?)의 스님과 오래 친교를 하면서 차를 마시며 서로의
사상을 주고 받았다고 하네요
.
강진읍으로 들어가 영랑생가를
찾았습니다
. 영랑의 시들을
기억하시는지요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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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메
! 단풍들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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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에서 참 잘 복원해 놓았군요
.
이제 우리도 백범 김구선생이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국가상을
문화국가라고 한 것에 접근하고
있다고 보아 집니다
.
남해안 여행에서 곳곳에 피어있는 동백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 동백나무가 아주 크게
자란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
다시
2 번 도로를 타고 이틀간의 여행을 마치고 광양으로 향했습니다
.
백학 드림
남해안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전부 휴대전화의 사진기로 찍었기 때문에 화면이 깨끗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