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세계 곳곳에
계시는 여러 벗님 들
:
24
일 아침 다시
2 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출발하였어요
. 이제는 길 좌우의 경치도 눈에 익숙해
지고 있군요
.
오늘의 첫 목적지는 녹우당입니다
. 해남읍에서
806 번 도로를 조금 내려가면 孤山 윤선도의 고택과
기념관이 있는 곳이에요
. 그의 작품 중 교과서에 나와 있던 五友歌
와 어부사시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구나
.................
앞산에 안개 거치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띄어라 배 띄어라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녹우당의 안채에는 해남 윤씨
집안의 사람이 살고 있고 사랑채는
일반에 공개되고 있었어요
. 사랑채
건물은 처마 앞에 처마를 하나 더
붙인 특이한 양식이군요
. 옛 한옥을
보면 자연친화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벽으로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나누는 서양식 건물에
비해 우리 한옥은
외부와 그대로 연결
되고 자연과 통하게 지어졌다고 느껴
지는군요
.
사랑채 옆에 옅은 황갈색의 진돗개로 보이는 개가 있어 내가 다가가니 꼬리를 치면서 반기길래
… ,
“어 이놈
!
사람을 알아 보는걸 보니 진돗개 이구만
!" 했는데
, 조금 뒤
7~8 명의 한 무리가 들어 오는걸 보더니 또 그 사람
들도 좋다고 꼬리를 치지 않겠어요
, 내가 속으로 한마디
"하는 꼴을 보니 동개 로구먼
" 하였지요
.
기념관 안에는 윤선도의 유물과 함께 증손자인 윤두서의 작품도 여럿 전시되고 있었는데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자화상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 윤두서는 정약용의 외증조부가 된다고 하네요
.
목적지인 보길도 행 배를 타기
위해
땅끝으로 가 전망대에
올라 남해의
다도해를 내려보니
한장의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 내 옆에
한 가족이 이야기 하는데
" 그리스
해안이나 이태리
카프리섬 해안보다
못 할게
없잖아
......?" 하더군요
. 나도
언젠가 그리스와 이태리의
카프리 섬을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보길도 행
배에 차와 함께 올랐습니다
.
고교 때 어부사시가를 배우면서 언젠가 한번 가 보겠다 했는데
, 드디어
40 년 만에야 이제 보길도에
왔군요
. 우리 고적들을 답사하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네 유적들은 참 素朴하다
” 라는 느낌을 언제나
받습니다
. 다른 나라의 유적들
(물론 이름난 곳이어서 그렇겠지만
)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더군요
.
그러나
, 우리 것은
일단 규모가 작고
한번 척
봐서는 별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므로 미리 꼭 공부를
해서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아야 비로소 그 美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
고산유적지는 보길도의 북쪽에 작은 계곡을 따라 몇 개의 정자를 세우고
주변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여 한 예술가의 이상을 구현한 곳이었어요
. 현재는 세연정 하나만 있지만 상류쪽에 곡수당과
낙서재를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어요
. 올
4 월에는 완공된다고 하는군요
. 전체적 느낌은 몇 년
전 가 보았던 담양 의 소쇄원과 비슷했습니다
. 우리의 정원은 주변 환경을 되도록 적게 변형시키면서
꾸미는 것이 특징 이랍니다
. 그래서 얼듯 보아서는 정원이라고 할 수가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
이에요
. 그래서 사전에 공부가 필요하다고 하는군요
.
참고로 일본 시고쿠에 있는 마쓰린
(松林
)공원에 가 보면 그 지방 영주가 몇 대에 걸쳐 만들어 놓은
공원인데
...... , 미리 공부 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
저녁 보길도 청별항의 민박집에 하루 묵었습니다
. 추워서 자다 깨다 했습니다
.
25
일 아침
7 시 완도로 가는 첫 배에 올랐습니다
. 완도로 가는 뱃길은 바다에 띄워 놓은 어장용
부유물 사이의 좁은 물길을 따라 가는 해상 주행시험장 같은 코스를 통과 하는 것이었어요
.
莞島의 완자는
'부드럽게 웃는
' 이라는 뜻이 있답니다
. 완도의 서쪽 해안에 있는 화흥포항에 내려
우선 가까이 있는 海神 장보고 촬영 세트장을 둘러 았어요
. 드라마를 직접 보지는 못했었지만
세트와 세트에서 촬영된 여러 사진들을 보고 장보고의 청해진을
드라마에서 어떻게
표현 하려고
했는지 이해를 하여 보았습니다
. 여배우들의 복장이 너무 화려한 원색이어서 오히려 사실감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
동쪽으로 가면서 정도리에 있는 구계동의 동글동글한 돌들이 해안을 덮고 있는 곳을 갔습니다
. 그
설명판에
"이 돌들은 원래 바닷가 암벽이 거칠게 깨어져 생긴 것인데 수 십 만년의 세월 동안
바닷물에 씻겨져 이렇게 둥글게 되었다
... "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 문득
, 불교에서 긴 세월을 표현 할
때
"선녀가 내려와 옷깃으로 스쳐 바위가 없어질 만한 세월
" 이라는 것이 떠 오르더군요
. 지구가
생긴지
46 억년
, 공룡이 사라진 때가
6500 만년 전
, 인류의 첫 조상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나타난 지
400 만년
.......... !!!
청해진 유적지는 완도의 동쪽에
있습니다
. 완도와 썰물 때에는
연결되는 장도 라는 섬이 있는데
,
발굴을 해보니 섬을 둘러싼
토성의 흔적과 많은 도기와
자기의 파편 등으로 청해진의
본영이 이 섬에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현재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 마침 썰물 때라 차를
몰아 섬 안으로 들어갔는데
복원된
토성을 따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바로 이 섬은 천연의
요새지가 될 수
있는 자리라고 여겨 졌어요
. 남쪽으로 완도읍이 보이는 곳에 앉아
9 세기 초 장보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일본의 스님 옌닌이 당나라에
구법 유학을 갈 때 바로 장보고
선단의
배를 타고 가는 과정이
옌닌의 여행기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삼국사기에
있는 것 이상으로 장보고의
세력이 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그 때 장보고가
쓸데없이 신라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말고
,
그 당시 타이완의 유력자 또는
오끼나와의 유력자 또는 필리핀의 유력자와 혼인관계를 맺어 그 쪽으로 진출을 하였더라면
1200 년이
지난 지금 쯤에는 그 곳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되어 있지 않았을는지요
?
이
진도의 장도섬을 본부로 하여
당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교역망을 건설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
적어도 본부를 제주도 정도로 옮기고 남방을 경략하였다면 위에 말한 세 곳과 함께 일본 열도의
큐슈 정도까지 세력범위에 넣는 큰 해양국가를 이룩하여
, 굳이 신라조정과 연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 , 신라관군에 토벌 당해 망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 !
쓸데없이 역사에 가정을 세워 보았군요
!
너무 길어져 내일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 .
백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