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 계시는 벗 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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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일요일
, 그 동안 미루어 오던 효자동길 을 걷기 위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 내려
4번 출구를 나와 걷기를 시작하였습니다
. 이 길은 세검정 쪽으로 갈 때 여러 번 통과하였지만 이렇게 거리를 직접 걷기는 처음이군요
.
경복궁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청와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 삼청공원으로 가는 경복궁 동쪽은 화랑이 많이 있어 이제 강북에서 이름이 나 있지만 이곳 경복궁 서쪽인 효자로에는 화랑이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여 이제 몇 개 정도가 이름을 얻어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 효자로를 올라가면서 첫 번째 화랑인
“
갤러리 차
”
를 만납니다
. 오늘의 목적은 길을 걷는 것이므로 갤러리 안으로 들어 가 감상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면서 그냥 외관만 보면서 나아 갔습니다
.
조금 더 가 왼쪽 공터로 조금 들어 간 위치에
“
대림미술관
’
이 보였습니다
. 주택이었던 곳을
2002년 프랑스 건축가
“
뱅 상 코르뉴
”
가 미술관으로 설계하여 개관하였다 합니다
. 역시 안으로 들어 가 보는 것은 뒤로 미루고 계속 걸어올라 갔습니다
.
곧 왼쪽에
“
진
”
화랑이 있었습니다
. 1977년부터 있어 왔다고 하는 이 근처에서는 가장 먼저 생긴 화랑이라고 합니다
. 외관 사진만 한 장 찍었습니다
.
바로 그 다음 벤자민햄버거집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 2층에서 경복궁을 내려다 보며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
곧 오른쪽에 경복궁의 西門인 迎秋門이 있어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 서울에 있는 여러 문 중에서 제가 보기에는 가장 멋있는 문이 아닐까 합니다
.
다시 왼 쪽에
“
메밀꽃 필 무렵
”
이라는 간판을 단 메밀국수 집이 있었습니다
. 메밀만두와 메밀부침을 잘 한다고 합니다
. 그런데 음식점외관과
“
메밀꽃 필 무렵
”
이라는 그 유명한 이효석님의 소설과는 잘 어울리지 않더군요
. 집 외관은 그냥 메밀묵집 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
조금 더 가니
“
보안여관
”
이라는 옛 날 간판을 그대로 달고 이제는 화랑인 이층집을 만납니다
. 원래는 청와대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던 여관이었다고 합니다
. 역시 내부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
곧 왼 쪽으로 난 골목길에 流歌軒 이라는 팻말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역시 화랑이었습니다
. 집이 한옥이었습니다
. 한옥이고 또 집 앞에 걸린 포스트의 사진이 특이하여 한 번 안으로 들어 가 보았습니다
.
공수정님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 전시실은 한옥을 개조한 곳이고 아주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 전시된 작품은 사진을 프린트한 것인데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
전시관 입구에 류헌식교수님이 쓴 작품소개문을 읽으니 좀 이해가 되었습니다
.
“
작가는 지금 자기의 죽음을 통한 자기의 극복에 참여하고 있다
. - - - 자기 초월이다
. - - -작품은 이렇게 초월의 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 - - -.
”
원두를 갈아 만들어 주는 커피를 한 잔 하고
, 전시실 사진 한 장 찍고
,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습니다
. 언제 다음 전시에 다시 와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
조금 더 가니 해공 신익희선생 옛 집 을 가는 길을 나타내주는 팻말이 있고
, 쌍홍문터 라는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 조선 중기 유명한 효자가 살았던 자리에 쌍홍문이 세워졌던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효자동이라는 洞 이름의 기원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
골목길을 죽 따라가니 해공선생의 옛 집이 있었습니다
. 1954년부터
1956년 서거 때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합니다
.
골목길을 돌아 나오니
“
아트家
”
라는 간판을 단 화랑이 있었고
, 김서경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 건물에 붙어있는 카페
“
두오모
”
가 있었습니다
. 외관사진 만 찍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
청와대 앞에 닿으니 영빈관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있는
“
청와대사랑채
”
에 들어 가 보았습니다
.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 역대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
역사적 사건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 5.16을 정변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박대통령에 대한 자료는 일견 의도적으로 줄여 전시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 가장 많은 업적을 쌓았는데 너무 홀대를 하고 있더군요
. 이 사랑채에 전시를 주관 한 사람들의 철학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
청와대 영빈관
”
쪽으로 건너 가려고 서 있는데 일단의 중국관광단을 만났습니다
. 관광안내인이 아주 유창하게 중국어로 설명을 하더군요
.
길을 건너 그 유명한 궁정동 안가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공원
“
무궁화동산
”
으로 갔습니다
. 김영삼대통령 초기에 안가를 밀어버리고 만들었지요
. 당시에 그대로 역사적인 장소로서 보존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서둘러 없애고 공원을 조성하였었지요
.
다시 청운동쪽으로 조금 더 가니 초등학교 앞에
2009년
10월에 세워진 송강 정철의 詩碑가 여러 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 고등학교 古文시간에 배웠던 익숙한 歌詞들이 적혀있었습니다
.
古文시간에 한국 한글 古文의 최고봉이라고 열심히 공부하였었는데
, 그 후 당시 역사를 자세히 공부하여 보니 이 정철 이라는 인물의 너무나 假憎스러운 행적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예술작품을 감상 할 때 작품과 사람 자체를 연결시키지 말라고 여러 번 듣고
, 또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지만
, 이 정철의 행위는 그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하였습니다
. 당시 임금 선조의 행동을 보면 한 열두서너살 정도의 성숙도를 보이는데 그 선조와 의식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
인왕산 쪽인 서쪽으로 더 들어가니 서울농
(聾
)학교가 있고 학교 담에 手話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
그 중에
“
사랑해
”
라는 뜻의 수화그림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
농
(聾
)학교와 연결되어 서울맹
(盲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 담에는 점자판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
장애인과 장애인 교육시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 몇 년 전 어딘가 장애인 학교를 지으려고 하자 주민들이 반대데모를 하는 모습을 뉴스시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
조금 더 가니 우당 이회영선생의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 경술국치 후
6 형제와 함께 만주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계속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으로
, 그의 동생 중 한 분인 이시영님께서는 대한민국 수립 후 제
1 대 부통령을 지내셨지요
.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나온다는 기린교를 보려고 옥인시범아파트로 갔지만 재건축을 하기 위한 건물철거작업이 진행 중으로 여기 저기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기린교를 볼 수 없었습니다
.
사람들은 다 떠났지만 개나리는 만발하고 있어 인왕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 나섰습니다
.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배화여자대학을 오른 쪽으로 보면서 천천히 걸어 나오니 전에 들렀던 사직공원 입구가 보였습니다
. 왼쪽으로 꺾어 다시 경복궁역으로 돌아 와 오늘의 걷기를 마쳤습니다
.
백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