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추진된 백두산 산행에 총 48명(부부 18쌍, 싱글 12 명)이 참가하여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7월27일 모두 무사히 귀국하였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우리나라 산중 최고로 높은 산으로 그 변화무쌍한 기후 변화 와 험준한 산세로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산행이었고 더우기 여성도 포함된 적 지 않은 규모의 인원이 참가하였기에 전원 무사한 귀환이 무엇보다 값진 성과일 것 이다. 이번 산행을 직접 주관한 입산회 박승훈 총무에 의해 공식적인 백두산 산행기는 작성 되겠지만 소생은 참가자의 일원으로서 이번 여행에서 보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행 문 형식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7월 24일(목) 아침 9시 40분 제법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는 중국 장 춘을 향해 힘차게 이륙하였다. 아마도 우리 20회 동기회 역사상 48명이란 대규모 인원 이 한 비행기에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약 2시간후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친 후 1호차, 2호차 2 대의 버스에 분승해 이곳에서 6시간 거리라는 백두산 관문인 송강하라는 마을로 향했 다. 다행히 이곳의 날씨는 좋았지만 백두산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다소 실망하였으나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이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만주 벌판의 풍경에 빠져 버렸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옥수수밭의 물결이 가는 길 내내 일렁이고 있었고 가끔은 논 (여기서는 水田이라 함)도 보이곤 하였는데 이 곳의 논농 사는 조선족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초록의 들판 속 간간히 빨간 기와지 붕의 집들이 제법 유럽풍의 牧歌的 장면을 연출하고 있어 이곳이 정말 그 옛날 여진 족이 수렵생활 하던 척박한 땅 만주 벌판이 맞는지 의아하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만주벌판이라 함은 중국의 동북3성(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을 말하며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에는 간도(북간도) 라고 불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연길,용정,도문을 포함해 5개 시가 있는데 이중 용정시에 조선족이 제일 많으며 연변전체인구의 80%에 이르는 약 80만명이 조선족 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창 밖에 펼쳐지는 산천초목 하나 하나에 우리 민족의 얼이 서려있는 것 같아 왠지 찡한 동질감에 젖어들기도 하였다. 약 6시간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달려 버스는 해거름 무렵 송강하에 도착하여 다소 허 름하고 을씨년스럽게도 보이는 백계산장이라는 곳에서 첫날밤의 여장을 풀었다.
7월 25일(금) 어젯밤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던 북두칠성 덕분이었는가 새벽 4시부터 환하게 맑은 이 곳의 날씨는 어제까지 장대비가 내렸다는 백두산 천지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백두산 천지에 대한 등정 코스로는 천지를 중심으로 남쪽과 동쪽은 북한측 영토라 접 근 금지이고 서쪽과 북쪽만이 중국영토로 접근 가능한데 우리 일행은 2개조로 나뉘 어 산행팀8명(남6명, 여2명)과 관광팀 40명이 일단 함께 버스를 타고 서쪽 코스의 관 문인 서파산문으로 가서 하차한 후 도보로 천지까지 길다랗고 구불구불 놓여있는 나 무계단을 약 40여분 올라 5호 경계비(조중국경경계)가 있는 산 정상에 올랐다. 가이드 의 말에 의하면 천지가 천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천지를 보러 왔다가 못보고 허탕치고 가는 사람천지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단다. 일년에 한 30일 정도만이 볼 수 있는 행운을 잡는다고 하니 우리는 잠시 후 과연 그 행 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자못 벅차오르는 설레임으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것 도 잊으채 단숨에 정상에 올라 선 후 눈을 살며시 감아 깜짝쇼 모드로 바꾼 다음 한발 한발 앞으로 다가가 눈을 활짝 뜨는 순간, 산 아래 절벽밑으로 펼쳐지는 그 장관의 파 노라마는 문자 그대로 리얼리티요 장엄의 절정이었다. 그것은 화산 폭발로 인한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단순한 산정호수의 풍경이 아니었 다. 그것은 5000년 우리민족의 혼이 잉태되어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생물체요, 영험한 혼불이었다. 영혼의 혼불은 이곳에서 발화되어 백두대간의 줄기줄기를 통해 우리 땅 구석구석, 우리가슴 깊이깊이 훈습(燻濕)되었으리라. 그렇다! 우리는 정말 복 받은 행운아였다. 천지가 그 전라의 실체를 부끄럼없이 몽땅 드러내 보여주는 외설스러움까지 마다하 지 않음은 우리와의 억겁의 인연인가? 아님 이동수총무의 말대로 어젯밤 자신의 철 야 기도발(?) 덕분일까? 정신없이 이쪽저쪽, 중구난방, 탄성과 환호에 취해 카메라 셔터의 향연은 그칠 줄 모 른다. 곧 이어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함께 단체증명사진을 찍은 후 산행팀은 이곳 을 출발하여 천지주변의 산봉우리 능선을 타고 북쪽관문까지 약 6-7시간의 긴 등반여 정을 위해 출발하였고 관광팀은 하산하여 금강대협곡을 둘러본 후 버스를 타고 어젯 밤 세찬비로 인해 유실되었다는 도로를 피해 좁고 울퉁불퉁한 숲속의 임도(林道)인 비포장도로를 통해 버스를 타고 온건지 버스를 밀고 온건지 모를 정도로 험난한 6시 간의 산전수전 끝에 가까스로 송화강 줄기인 이도백하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여 일단 여장을 풀고 산행팀을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고려 식당으로 향했다. 보무도 당당히 7시간의 대장정을 마친 산행팀 8명이 식당에 들어서자 모두 기립박수 로 맞아 주었다 특히 여성대원인 김웅배부인, 엄량부인에 대해선 박수가 더욱 뜨거웠 다. 저녁식사후 변경된 내일 일정에 대한 열띤 격론이 맞장토론(?)으로 까지 격해질 뻔 해 자못 팽팽한 긴장감을 주기도 했지만 역시 인왕산 정기를 받은 경희궁의 주인들은 지혜롭게 결론을 조율해내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나라 정치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 새 벽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월 26일 (토) 새벽 5시 우리는 북쪽루트(일명 북파)의 백두산문(장백산문)을 통해 버스로 약 40분 달려 장백폭포앞에서 하차한 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이 코스는 몇일 전 TV의 한 프로 에서 젊은 연예인들이 천지에 오르는 장면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젊은 이들이 산을 오르면서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워해서 솔직히 내심 걱정도 되었던 코스였다. 천 지로부터 발원돼 흘러내리는 장백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배경으로 몇 커트 셔터를 누른 후 폭포 오른쪽 옆으로 길게 위쪽으로 뻗어있는 약 2.6Km 오르막 터널계단을 기 다시피 한 40여분 오르면 달문(達文)이라 하는 분화구벽의 틈새가 나 있는데 이를 통 해 나가면 넓고 광활한 초원지대가 나타나고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있는 야생화들 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이 초원 저 편 끝으로 코발트빛 명경지수, 천지가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몸을 허락해 주고 있지 않은가. 어제의 모습은 일정 거리를 두고 시각을 통해 감성을 자극한 것이었다면 오늘은 천지 와 내가 하나의 합일체가 되어 청각,후각,촉각,미각의 결정체를 통해 육감(肉感)을 자 극하는 것이라고 할까? 산은 무정물(無情物)이 아니라 유정물(有情物)이다. 산이 숨쉬는 맥박이 들리고 발밑 의 지기(地氣)가 몸의 경락을 통해 상단전으로 느껴질때 소우주인 인간은 대우주인 산의 품에 마음놓고 안기며 산은 나의 애인이 되어 마운틴 오르가즘(Orgasm)을 경험 하게 되는 것이다. 한 여름에도 천지의 물은 시릴 정도로 차가왔다. 비록 모습은 환히 드러내 보여 주었 지만 시리도록 차가움은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들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천지의 자존심이자 곧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리라. 물 건너 저편 북한 지역인 남쪽, 동쪽의 산봉우리들은 적막만이 감돌고 백두산 최고봉 이라는 장군봉(2,749m)은 당당한 위용보다는 오히려 쓸쓸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중국과 대조되는 오늘날 북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만 이틀에 걸친 백두산 천지 탐방을 끝내고 연변조선자치주의 주도인 연길로 향했다. 연길 시내의 모든 간판이 위쪽 또는 오른쪽에 한글로 반드시 표기토록 돼있어 마치 서 울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번화한 도시였으며 한국의 TV가 실시간 방영되고 있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한국과의 문화적 궤리가 전혀 없어 보였다. 연변과 한국 중간에 샌드위치 신 세인 북한만이 완전 폐쇄된 고립무원의 세계에서 체제수호를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 을 뿐이었다. 번쩍거리는 네온싸인의 현란한 불빛 속에 연길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7월27일 (일) 새벽 4시30분 기상하여 서둘러 짐 챙기고 호텔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싸들고 연길 공 항으로 향했다. 중국 국내선을 타고 장춘으로 이동한 우리 일행은 4시간의 지루한 기 다림 끝에 낮12시 드디어 인천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고 2시간 후 인천 공 항 도착시 에는 누구의 로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고 20회 동창회원들의 탑승 에 감사하다는 아시아나승무원의 뜻밖의 특별 기내 방송서비스와 함께 졸업 40주년 기념 3박4일 백두산 산행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끝으로 이번 여행에 참가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강영수,김동호,김부경,김영,김 웅배,김잉곤,김재년,김춘상,김해동,박승훈,박준상,석해호,승영호,양정수,엄량,유태식, 윤용현,이동수,이상일,이선길,장재훈,장진호,장형순,정주성,조철식,차성만,최문식,최 용표,하현룡,황학연(이상 30명)친구들 및 18명의 사모님들 그리고 특히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추진했던 20회 동기회 및 입산회 임원들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 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