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사절합니다.
우리 사무실은 진정 난의 종말 처리장인가? 애란가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판이지만 사실 우리 사무실에서 마지막 처리된 난은 실 로 한두 개가 아니다. 물을 주지 않아 고사한 것으로 전 주에 마지막으로 몇 개가 실 려 나가고 나니 이제는 그나마 눈에 거슬리는 게 없어 좋다.
본인은 실제로 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의수협에 오면서 지인이 축하한다고 몇 개 보내 준 난들이 아직도 내 책상 주변에는 난이 네 개나 존재하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방치하자니 보내 준 사람들의 얼굴이 더 올라 진퇴양난이다. 일주일에 한번만 물을 주면 되는데 그 것 이 만만치 않다. 금요일 퇴근 전에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 이었다. 화장실까지 들고 가더라도 물을 흠뻑 먹이도록 세면대 구조가 않되 있고 주말 에 일찍 퇴근하는 습성 때문에 사무실에서 부산을 떨기도 무엇 해서 여직원에게 임무 를 맡겼었는데 결과는 여의치 않았다. 몇 번인가 메말라 가는 난을 보고 물을 주는 것 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보니 난의 줄기 몇이 말라 비틀어진 상태를 보니 가슴이 짠했 다. 모두가 내 탓이었고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다. 만사를 제쳐 놓고 화장실로 들고 가 물을 흠뻑 먹였다. 하면서 이제부터는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하리라 마음을 다 잡아 먹었다. 주말에 마감하면서 물을 주는 것 보다는 월요일 아침에 난에 물을 주는 것으로부터 일과를 시작하면 된다. 이른 아침이라 남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솔선수범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작심삼일이 안되어야 할 텐데. 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난을 보다 애지중지하실 분이 있다면 흔쾌히 분양할 생각도 있다.
나는 도회적인 성장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정서가 둔해서 그런지 동식물을 사랑할 지 모르나 보다. 나와는 정 반대로 집사람은 집에서 화초를 즐겨 가꾸고 쉬는 날에도 우 리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 여기저기 꽃을 심으러 다닌다. 우리 집에서 가장 대우받고 있는 것은 문주란이다. 30년 가까운 수령으로 자식도 많이 분양했고 꽃도 잘 피운다. 신혼여행 시에 못 갔던 제주도를 결혼 9주년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당시 500원을 주고 15센티 정도의 아기 문주란을 사다 심은 것이 이렇게까지 큰 것이다. 집사람은 외국 을 여행 중에도 예쁜 꽃만 보면 씨를 받아와서 검역(?)을 무시하고 국내에 파종하는 용기(?) 있는 행동을 감행해서 말리거니 하자거니 하며 말 다툼에 이른 적이 한두 번 이 아니다.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는 캐나다에서 씨앗을 밀수입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 어있다.
갈증을 느낄 대는 이미 수분 공급의 때를 놓친 것이다. 식물이 모습을 변해가면서 갈 증을 호소하기 전에 물을 먹여보자. 내 옆에 있는 난들이 우리 사무실에서는 제일 고 령으로 7개월인데 최대한 나이를 먹도록 해 볼 작정이다. 우리 각자는 물먹는 방법을 알았으니 주변에도 물 먹는 방법을 전파하거나 물을 먹여 보도록 하자.
나는 6월의 화려한 장미보다 함초롬히 피어 오르는 찔레 꽃이 더 좋다. 인공적으로 키 우는 식물과 꽃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들에서 피는 야생화가 더 좋다. 겨울 철에 반대편 나라를 여행하며 푸르름을 바라보면서 시원함을 느껴볼 때 너무 좋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굳이 꽃이 아니더라도 푸르름이나 녹색을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갔으면 하는 감상에 젖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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