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 늙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 힘으로는 어쩔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추하게 늙는 것은 두렵다 늙은 것이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아무데나 반말해대고 고집불통으로 남의 말은 전혀 안듣고 제 말만 쏟아내고 젊은이들 세상 이해는커녕 왕년에만 집착하여 세상개탄만 일삼고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야속해하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욕심을 버리긴 커녕 더욱 큰 욕심에 집착하며 모든 탓은 남에게 돌리고 그래서 주위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그런 노인이 될까 정말 두렵다.
나는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 젊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하고픈 사춘기를 엄격한 통제의 그늘속에서 방황하고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단 한점 차이로 성패의 갈림길을 맛봐야만 했고 3년이란 기나긴 군대생활에서 그토록 더디가는 시간에 애태웠으며 생판 모르는 여자 다시 만나 지금의 마누라같이 편한 여자로 만들어야 하고 아들 딸 골고루 낳아 건강하게 잘 키우기도 쉽지 않고 직장이라는 냉혹한 사각의 정글에서 살아 남기위해 가끔은 싫은 상사에게 맘에 없는 아부성 발언도 필요했던 그런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마음까지 늙는 것은 정말 두렵다 호기심이라곤 없어 무엇을 봐도 시큰둥하고, 모든 것 다 통달한양 입으로만 떠벌리고 의욕이란 전혀 없이 옛것에만 집착하고 할 일 없어 소일거리 걱정하고, 오라는데 없어 먼 하늘 바라보고, 남에 대한 배려 없이 그저 대접이나 받으려 하는 그래서 걸핏하면 섭섭하다 한탄하는 그런 늙은이가 되는 것은 정말 두렵다
비록 세월의 나이는 먹더라도 경륜이라는 품위의 향기를 내쉬고 산뜻한 젊은이의 싱그러운 내음도 들이쉬고 음미할수 있으며 원대하고 거창하지는 않을지라도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워 자아실현의 성취감도 맛보고 유머와 여유를 즐길수있는 그런 멋진 노신사가 될수 있다면 나는 늙는 것이 절대 두렵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삶의 종말이 닥치더라도 아무 아쉬움없는 충만된 삶을 살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천상의 삶이 아닐까? 죽어서 가고 싶어하는 막연한 천당보다는 살아서 누리는 확실한 천당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아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울때 나는 늙는 것이 결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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