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안개에 젖어
비 오는 파리는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합니다. 인천을 떠난 비 행기는 12시간을 날아 이 곳 샤르르 드골 공항에 18:30(한국시간 01:30)에 도착 후 파 리 시청 근처에 위치한 저녁식사 장소까지 이동하는 과정 중 차창 넘어 보이는 것 모 두가 훌륭한 관광거리입니다. 10 여 차례 이상 파리를 방문했지만 올 때 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파리 북역 근처를 지나가며 그들의 전 식민지 이주자들을 비롯하여 인 도,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인까지 마치 작은 세계 인종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또 하나 의 파리의 모습이지만 할렘화 되어가고 불란서인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리를 지나며 최근 그들의 폭동사태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바로 오늘 주범 격인 16세 에서 18세 소년들이 재판을 받았다는 설명을 아울러 들어야 했습니다. 차도를 두르고 아이들 두 명을 데리고 고개를 푹 숙인 체 걸어가는 아랍 여인과 반대편으로 지나가 는 버스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동남아인의 모습은 낭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걸 맡는 1인당 2만5천 원짜리 김치찌개(사 실 김일성이가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던 Zurich의 한국식당 팔각정에서는 3만원을 지 불한 기억도 있습니다.)를 일행(16명)과 함께하고 숙소로 정해진 Sofitel로 향했습니 다. 김치찌개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쎄느강을 건너서 노틀담사원, 소르본느대학, 루불방문관, 오르쎄이박물관, 퐁뇌프다리, 알렉산드리아삼세다리, 앵발리드, 콩코드 광장을 뒤로하고 달리는 순간 지난 방문 기억들이 주마등마냥 지나갑니다. 지하철 타 고 발로 걸었기에 추억이 더 생생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아는 척하면 가이드에게 미움을 받으니 우리 부부가 문화기행이라고 이름 지은 10여 년 전 5박 6일간 지하철 표 36장과 걸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일주했던 파리의 추억을 되삭임 하는 동안 버스 는 점멸하는 에펠탑을 멀리 돌아 숙소에 다 달았습니다. 4년 전 한번 묵었던 기억이 나는 불란서답지 않은 고층건물에 비좁은 Business 호텔 15층 방에서 첫 밤을 맞이하 였습니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전망은 꽤 괜찮습니다.
한국과의 시차는 일곱 시간이지만 3박5일의 짧은 여정이기에 시차운운 할 여유가 없 고 전투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잠을 청해도 생체시계는 아침 7시를 주장 하고 있으니 잠이 올 리 없지요. 늘 하던 대로 Night Cap(실제로는 잠을 청하기 위한 마시는 술 류를 지칭하는 말)을 쓰고 자보았지만 기껏 서너 시간 끝에 눈은 떠지고 썰 렁한 방안에서 외로운 나그네의 날갯짓을 가동할 수 밖에요. Internet과 메일도 확인하 고 기행문도 쓰니 예전에 TV의 영화로 시간을 때울 때 보다는 건설적이라고 해야겠지 요.
몇 년 전만 해도 호텔에서 Internet을 연결하는 것이 기술로 평가 받던 시절이 있었는 데 그 때는 전화로 연결해야 했기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경우 외부 연결선이 시내 통 털어 두 개밖에 없어 두 시간 이상을 씨름 끝에야 연결한 적도 있었고 독일이나 일본 의 경우 전화가 전자식이 아니라 아예 연결이 안되기도 했었습니다. 오늘의 현실은 코 드도 없이 데스크에서 10 Euro Ticket만 사면 2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니 격세지감이랄 수 밖에요. Off Line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송수신 시만 연결하면 한 달도 사용이 가능 하다는 것은 본인의 생각만은 아니겠지요?
아침 머리 준비 체조를 끝냈으니 본격적인 출장 준비를 해야지요. 파리 소식은 이어집니다.
2006. 10. 03. 05:00 개천절 아침
김 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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