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했던가? 만산홍엽의 아름다움에 취해버릴 듯한 이 가을에 유난히 가을을 타는 초로의 일곱남자들이 가을 속으로 함께 빠져들기 위해 집을 나섰다.
테마여행? 가을기행? 역사탐방? 딱히 걸맞는 제목은 없지만 분명 우리는 떠났고 보았고 느꼈고 그리고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공적, 사적으로 국내, 해외로 각종 여행 경험이 많았지만 오십줄 중반을 넘은 나이에 마누라빼고 순수 남성혈통들끼리 그것도 하룻밤 외박하면서 해외도 아니고 국내에서 특별한 목적(골프,낚시, 등산등 ) 없이 그저 가을따라 발길따라 구름에 달가듯이 우리 는 훌쩍 그렇게 떠났다. 송강회 박정길회장,이상일지부장 그리고 신동열,이봉호,우제룡,최문식등 송강회 멤 버 6명은 차 두 대에 각각 분승하여 11월 3일 오전10시 서울을 출발, 전주에서 특별게 스트로 초대된 양지원군을 만나서 전주비빔밥으로 점심식사후 7인의 악당들의 일견 요상스럽고 야리꾸리하기도한(?) 가을여행의 서막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를 빠져나와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에 도착하여 대나무숲으로 조성된 대나무테마공원을 한바퀴 돌며 단 몇일만에도 쑥쑥 키가 큰다는 대나무를 보며 우후죽순이란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이어 그 근방에 있는 명옥헌, 소쇄원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정원형태를 갖춘 조선시대 고옥을 방문하였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의 공신인 오희도가 후한벼슬도 마다하고 이곳에 집을 짓고 칩거 하던 곳으로 가운데 섬이 있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그 위쪽에 정자와 서재를 지은 단 조로운 구상 이지만 연못주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심어 언덕아래로 내려다보이 는 시야를 끌어들임으로서 시원한 공간을 창출한 점이 특이하였다. 소쇄원은 중종때 대사헌이었던 조광조의 문하생이었던 양산보가 조광조가 기묘사화 로 유배되자 이곳으로 낙향하여 두문불출 지내던 곳으로서 작은 폭포와 연못, 제법 깊 은 계곡위로 사랑채와 서재가 있고 그 주위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가히 절경이었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자연을 경영하지않고 오직 자연속에서 행복하게 묻히고자했던 조 선시대 원림의 미적 규범을 실감할수 있었다.
점점 빨리 찾아오는 해거름으로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땅거미지는 무등 산을 넘어 야경 불빛 눈부신 광주에 도착하여 우리 모두의 입을 즐겁게 하기위한 2단 계 작전에 돌입하였다. 광주에서 유명하다는 홍탁삼합집을 긴급수배하여 천신만고 끝에 찾아 암모니아 냄 새 요상한 맛에 흠뻑 젖으며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저녁을 배불리 먹고 이어 소화기 능을 촉진시키위한 제3단계 작전으로 당구게임을 개최, 300이상의 메이저리그와 그 이하의 마이너리그로 나눠 각기 기량을 겨룬후 제법 가벼워진 최적의 몸 컨디션 상태 에서 드디어 우리의 심신을 즐겁게 하기위한 오늘의 마지막 메인 이벤트인 음주및 가 무음곡의 향연이 펼쳐져 깊어가는 이 가을밤에 7인의 악당들은 으~아 !!!! 어느새 광란 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고 만다.
다음날 우리는 근처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식사후 광주를 떠나 나주평야를 가로지르 며 넓은 들 저편으로 완만한 산등성이의 여린 곡선을 호기심으로 보고 영암 월출산의 장엄함을 신비로 느끼면서 강진에 도착하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내 눈에 비치는 남 도의 특징은 지중해 연안 지방처럼 포근한 들판과 느릿한 산등성이의 곡선 그리고 황 토의 붉은 빛이었다. 강진에서 우리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김영랑 시인의 생가에 들렀다. 동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전통적 초가 한옥의 형태로 본채와 사랑채가 널찍이 자리잡 고 있고 뒤쪽으로는 빽빽한 대밭과 동백나무 그리고 노오란 한그루의 유자나무가 그 윽한 남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 이곳으로 유배와 머물곳 없이 전전하던 그에게 이 초당을 마련래준 다산의 외가쪽 친 척뻘되는 해남 윤씨 무덤을 지나 언덕 계단을 오르면 숲으로 가려져 다소 음침해보이 는 허름한 초당이 보이는데 다산은 이 곳에서 그의 명저 목민심서등을 집필하였다. 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필체이고 그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조그만 기와누각인 다산동암의 현판 글씨는 정약용자신의 것이란다. 우리는 다산동암옆으로난 산길을 올라 천일각이란 조그만 정자에 들어가 눈아래 환 히 펼쳐진 강진포구의 시원한 전경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타임머신의 시간을 200 여년전 다산시대로 되돌려 맞추고 그시대를 함께 호홉하고 음미해보는 의미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학창시절에 외웠던 시조 한수씩 읖조리면서 깔깔웃어보는 흥겨 운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18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각고의 고통과 시련속에서도 위대한 사상과 많은 저서를 남 긴 실학자요 사상가고 경륜가며 그리고 과학,의학, 종교등 여러분야에서 탁월한 식견 을 갖춘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다산 정약용...... 그가 초당옆 바위 석벽에 "丁石"이라고 손수 쓰고 새겨놓은 암각글씨에서 그의 숨결 이 느껴지는듯하여 왠지 가슴이 찡하게 저며온다.
이제 우리는 도암 소금강이라는 그림같은 절경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우리나라 땅끝 마을이라는 해남으로 향하고 있다. 점심때의 시장끼를 우리나라 3대 한정식 식당으 로 손꼽힌다는 해남의 천일식당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다. 해남의 개천가 시장통 구석에 자리잡은 이 식당은 특히 떡갈비맛이 일품이고 토하젓, 갓김치등 양념맛이 진한 전라도 특유의 맛이 혀 끝에 감치기는헌데 값(1인분17,000 원)이 좀 거시기헌게 장난이 아닌것 같지라우...
해남이 땅끝이라 더 이상 갈 땅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기수를 더욱 남으로 돌려 울돌목위로 육지와 연결된 진도대교를 건너 한국 남종화의 거장이며 진도 운림산방 의 3대인 남농 허건화백의 기념관을 관람하였다. 우리는 흔히 남도를 "예향"이라 일컸 는데 남도지방은 다른지방에 비해 특히 한국화가 발달하여 독특한 남화풍을 형성해 왔다고 한다. 진도에서 뜻하지않게 남농과의 만남은 또 하나의 커다란 수확이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내려갈 남녁이 없다. 기수를 U턴 시켜 귀경을 서두르기 시작하 였다. 서해안 고속도로 최남단 종착지인 목포에 도착하여 북항 횟집거리 한 식당에서 복분 자술을 곁들인 싱싱한 회와 세발낙지등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1박2일 짧은 우리의 여행을 결산하고 밤 9시 15분 목포를 출발 4시간만에 집에 도착하면서 우리의 가을 여 행은 막을 내렸다.
비록 제목없이 출발하였고 뚜렷한 목적지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남도여행에 걸맞 는 분명한 테마가 있었고 또한 무르익는 가을의 정취를 함께 나누고 싶었던 5학년 6 반 가을남자들의 일상탈출을 위한 작은 반란으로 오래 기억되리라 믿는다.
"아~ 그대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새벽 2시... 한창 꿈나라 여행중인 마누라곁에 살며시 비집고 들어가 일상탈출의 날개를 접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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