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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손희정군 장례식 때 추도문 (최종태 씀)

조회 수 8171 추천 수 0 2010.10.15 17:05:08

故 孫希正군 영전에

 

사랑하는 희정아,

 

지난 4월 건강에 약간 문제가 있다던 소식을 듣고 나서 부터 자주 떠오르던 너와 내가 함께한 42년세월,

부음을 접하고 나니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 그 많은 추억이 쉬지않고 꼬리를 무는 구나.

 

고등학교 입학 첫날 만난 우리는 서로 성격이 많이 달랐지만, 여러가지가 서로 통하는 점이 있어 곧 친하게 되었고,

3년동안 두번이나 같은 학급에서 지내며, 집 방향도 같아 많은 날, 밤늦은 때까지 공부하고 함께 집에 돌아갔었지.

몇번인가는 시장도 하고, 싫증도 나면, 학교앞 중국식당에 가서 짜장면 다음으로 친근한 군만두와

중국 독주 한두잔의 어울림도 있었고.

 

졸업후 대학입시에 성공치 못하여 다시 준비할 때도 서로를 꽤나 열심히 이끌었지.

지치고 힘들때는 광화문 부근에서 백원짜리 돈카스로 배를 채우곤, 코리아나 극장에서 동시상영 영화도 보고 하며

우리만의 특별하고 저렴한 방식으로 재충전도 했었지. 이리저리 도서관을 다니며, 무더위로 짜증날 때면,

기필코 내년 여름에는 전국일주 여행을 하자며 서로 힘 북돋아 주었었지.

 

목표 달성하여, 드디어 대학 입학식날, 둘이 함께 조촐하게 자축하는 자리에서 술이 약해 가누지 못하는 나를 걸쳐업고,

종로5가 에서 동대문 길을 지나며, 교복차림의 대학생들 하는 행태를 가엽고 못마땅해 하던 행인들의 눈총도,

부러움의 눈길이라며, 얼마나 행복해 했었는가.

 

비슷한 시기에 군에 입대하여, 외출, 휴가때 만나면, 특수 첩보부대원이 아니랄까, 너무나도 건장하고 늠름한 너의 모습,

집사람의 졸업식에 나 대신 참석하여 부조한 기념사진에 그대로 남아있어 가끔씩 꺼내보며

그시절을 꽤나 정감어린 마음으로 회상한다네.

 

세운상가 청계천 다리위에서 동업은 하나도 잊지 않았겠지. 너의 부친께서 인생교육차 등록금대신 내어 주신 수제품,

어찌나 안팔리는지, 기다리다 못해 둘이 각본을 짜서, 나는 장사꾼, 너는 바람잡이, 이렇게 해서 행인들의 관심을 유발하여

모두 처분하였을때, 힘든 호객행위 노동보다는 약삭바른 잔꾀의 협력이 위력을 발휘했다고, 얼마나 웃었는지.

결국 부친께서 내어주신 이익금 상금은 최상의 저녁과, 통행금지 직전까지 당구경연으로 다 써버렸지만.

 

졸업후 한동안 미국과 한국으로 나누어져 몇차례 상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곳을 안내하고,

말리부 바닷가 근사한 식당에 저녁까지도 마련해주는 진심어린 그 마음에 제대로 그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못했던 것이

지금도 많이 후회되네. 원래 너완 달리 내성적이라,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밖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인 것을 잘 알지 않나.

 

매사 적극적이고 그쾌활한 성품으로, 작은 것에 힘들어 하는 나를 돌이켜 위로해주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다정다감하게 친구처럼 또 선배 처럼 이끌어 주었지. 복학후에는 학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몇년 어린 후배들과 겨뤄

당당히 매학기 수석을 빼놓지 않았으며, 졸업직전에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토목 기사 자격시험을 단 한번에 통과 하여

나의 안이한 마음을 흔들어 깨워 주었고, 자신은 궁둥이가 무거워 공놀이는 재주가 없다면서도, 작은 공을 다루는

당구와 골프에서의 남다른 실력은 자타가 인정하지 않았었나. 10여년전 지천명의 즈음에는 종교와는 거리가 있는 나에게,

 “ 산다는 것은, 결국 생활에 충실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살며 남을 돕고, 특별히 교회에 즐거운 마음으로 많이 봉사하면

그 삶을 채워주시지 않겠느냐!” 하며 다시한번 신앙에 작은 씨앗을 뿌리게 해 주었지. 모처럼 이곳 L.A. 동창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면,

우습기도 하고, 무척이나 심각하기도 한 표정으로 익살을 떨며 분위기를 주도하여 언제나 좌중의 중심이었지.

생각해보면, 너는 참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구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또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이제 먼저 떠나면서도, 다시 한번 삶의 뜻을 생각하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구나.

이런 너를 평생의 친구로 갖은 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았구나.

 

지난 4월, 처음으로 몸의 이상을 발견했을 때, 또 그이후 여러번 예상치 못했던 고비를 당할 때마다,

“ 그래도 하나님께서 일찍 발견하게 하시여, 약간 불편할 것을 참아내면, 곧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냐” 며 내내 긍정과 감사를 잊지 않았었지.

 

지난 7월 집으로 찾아 갔을 때, 내 옷에 묻은 빨간 점을 발견하고는 비빔냉면을 먹었나부다 하고, 갑자스레 매운 것을

먹고 싶다고 했을 때는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 네 앞에서 내색하지 않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의사들도 모두 손놓아 버렸지만, 본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건강회복의 의지를 놓지않아, 점차 회복되는 것 같다하여,

12월중 금명간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려니 기대했었는데…. 무심하시게도,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애원을 외면하시고

이렇게 일찍 데려 가시는구나. 생각할 수록 너무도 안타깝고, 허전하고 애통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어떻게 너를 떠나 보내야 할지 알수 없구나. 자신의 위중함을 듣고, 종점이 가까움을 확인하고 나서,

한 인간으로서 더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속에서도, 생의 의지를 접으며, 이제 더이상 자신을 위해 너무 애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 하던 그 초연함. 40년 이상을 지켜본 너와 조금도 다름이 없지 않구나.

 

희정아!

너무나 많은 것을 한번에 잃어 버리는 구나! 그 무엇보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가슴속 사연을 거리낌없이 털어놓으면,

귀담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의지와 편안함을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 봄까지도 그렇게 건강하게만 보였던

너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을 도저히 실감하지 못하겠구나. 지금까지 함께한 세월, 즐거웠던 일, 어려웠던일,

격려와 위로, 이 모든 것 너무나도 생생하고, 금방이라도 그다정한 목소리로 옆에서 부를 것 같구나.

지난 40년의 세월을 넘어 또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도 차지 않을 텐데.

 

네가 떠난 다음날, 새벽을 보았다. 아직 여명이 채 가시지 않아 어두 컴컴한 동녘하늘은 잔잔히 옅은 구름에 감싸인채

그무언가를 고즈녁히 기다리고 있더구나. 언뜻 구름한자락 사이로 붉은 빛이 감도는가 했더니 곧 전체가 채색되어 가고,

점점 영롱한 오렌지 빛깔을 띄기 시작하며. 일순간에 잘 녹여진 쇳물과도 같은 영롱한 빛을 비추기 시작되며,

그가운데로 너의 모습이 보이더구나.예의 그 넉넉한 웃음을 띤채 여유있는 얼굴로, “ 내 먼저 길을 떠나네.

가서 좋은 자리를 잡아둘 것이니, 내 남겨둔 일 마저 마무리하고, 천천히 뒤따라 오게.

그러나 너무 오래 지체하지 말고. 여정이 지나치면,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할 테니” 하고 말하며.

 

어느덧 누리에 광명의 햇살이 비치며 세상전체가 밝아지는 것이 네가 분명 편안하고 좋은 곳으로 떠난 것임을

재삼 확인하여 주는 듯하더구나.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거라. 언제가는 우리 다시 만나지 않겠느냐.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를 드리며, 이제 너를 보내야 겠구나.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주님께서 불러가신 사랑하는 우리의 희정이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주님을 배우고, 자녀가 되기위해 주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비록 세상을 살며 어긋나는 일이 있었더라도, 데려가시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바라며 마지막을 다한 그의 믿음을

높이 받아주시어 하늘나라 주님의 곁에 거두어 주시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또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애통해하며 마지막길을 차마 보낼 수 없어 힘들어 하는 저희들을,

주님의 따듯한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어, 이세상에서의 고인의 공덕을 기리고,

훗날 주님앞에서 다시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기쁨속에 온전히 주님께 보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저희에게 하늘의 평안이 늘 함께 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소서.

 

주님, 희정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아멘

 

 

2006년 12월 : 최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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