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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는 내 생활의 활력소

조회 수 5036 추천 수 0 2014.03.21 12:02:18

아래 글은 서울고 동창회보 2014년 봄호에 게재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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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葉片舟로 舟遊天下


20회 동문이면 우리나이로 예순다섯이다. 요즘 신체나이가 10세 이상 젊어졌다고는 해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손주 응석 받아주면서 집이나 지키고 있을 나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요트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20회 배헌종 동문이다. 여럿이서 함께 항해를 해도 태풍이 불고 풍랑이 일면 오금이 저릴 듯 한데

대양을 혼자 항해 한다니...

인터뷰에 구미가 당겼다. 배동문의 사업장이 있는 안산(행정구역상으로는 시흥시 정왕동)은 먼 곳이었지만

휴일 아침 댓바람부터 불원천리 마다 않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배동문은 총동창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김억(20회)동문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인물이다.

김동문은 “우리 나이에 요트 한 척에 몸을 맡기고 대양을 항해하고 있는 용기 있는 친구가 있노라”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었다.

그 말에 나는 배동문이 마초풍의 호남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빈 사무실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되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회색 머리에 호리호리한 체격, 온화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 ‘젊은 오빠’였다.

빗나간 기대가 호기심으로 바뀌면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 들어 오다 보니 회사 상호가 ‘인왕산기’이던데 인왕은 서울고 뒷산에서 따온 이름일테고, 산업기계를 생산하는 업체인가 봅니다.


“맞습니다. 자동차정비기기, 부품제조설비 같은 제조기계를 생산하다가 15년 전부터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노트북을 여닫을 때 필요한 힌지, 다시 말해 경첩을 만들고 있는 거지요. 베어링도 일본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비슷한 계통에서 하셨나 봅니다.


“아니에요. 직장생활은 겨우 2년 정도 했어요. 조직의 상하관계가 체질에 안 맞았어요.

외국계 회사에 입사했다가 인사부장이 고용계약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길래 싸우고 그만뒀어요.”
 
-사업이 적성에 잘 맞는 편이신가 봅니다.


“웬걸. IMF때 회사가 흔들려서 노숙 직전까지 갔었어요. 15년만에 겨우 자리 잡고 그나마 이 만큼 살고 있는거지요.”


-서울고등학교 출신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고지식한 것이라던데 선배님도 그런 편이신가요?


“우리가 곧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이렇게 평생 고생하잖아.

사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난 세무서 하고도 싸우고 그래요.”


외모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강단이 배동문의 내면 어딘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요트로 바다를 누비시겠지’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내년 사업전망은 어떻게 하십니까?


“중소기업들은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일거리가 없어. 소기업들이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산업구조라는게 외국과는 틀려서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이 없는 일들만 하고 있거든. 우리나라가 급격하게 산업화가

되면서 중소기업들은 임가공 형태나 기술집약이 덜한 업종으로 커왔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게 현실이에요.

소기업들이 기술집약적 사업을 하려면 투자를 해야하는데 수익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연구개발을 하려면 매출의 30%이상 수익이 나야 가능해요. 연구개발 없이는 미래도 없는데 기술연구에 대한 세제혜택도 없어.

중국은 쫓아오고 있는데 큰일이에요.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연계 상황을 보면 협력관계도 약하고... 대기업들은 필요하면 일거리를

주지만 필요 없으면 미련없이 돌아서 버리지. 내 나이가 있어서 확장을 주춤거렸지만 내년에는 추가로 투자를 할 계획이에요.

두 번째로 어려운 것은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야.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테크니션도 구하기 힘들어요.

청년실업자 100만이라고 하지만 중소기업 다니면 결혼 못한다고 안 와. 여직원을 뽑으면 봉급을 적게 받아도

서울에 있는 회사로 자리를 옮겨요.”


-한평생 경영만 해오셨습니다. 선배님께서 생각하는 경영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나는 기술자에요. 40년을 기계설계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요. 그나마 내가 직접 했으니 여기까지 오게 된거죠.

우리 회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소문 듣고 찾아오는 고객들 하고만 거래를 하고 있어요. 그쪽에서 필요하니까... 삼성도 우리 제품을

쓰고 있는거지요. 경영의 요체라면 남 보다 특출한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사업은 때가 있는 것 같아.

흐름을 쫓아 가는 건 힘들고, 내가 걷는 길과 시대의 흐름이 마주 만나면 사업이 크는 것 같아요. 나는 두 번 망해봤어요.

인왕산기는 세 번째 회사지요. 석유 파동때 아버지 집까지 날려먹고, 외환위기때 사업 망하고 이번이 세 번째 회사에요.

이제 망하지 않는 방법은 체득했지요.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


먹고 사는 곤고한 세상살이 이야기를 들어봤으니 이제는 대화의 방향을 틀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회면 65살인데 어쩌다 요트를 타게 되셨습니까?


“요트 탄지는 3년밖에 안됐어요. 그 전에는 무동력 글라이더를 탔지요. 어렸을 때 모형비행기를 했는데...

그쪽에서는 내가 원로에요. 노년을 어떻게 지낼까 생각했는데 ‘글라이더를 다시 탈까?’ 하다가 지각능력도 예전 같지 않고...

요트를 가진 친구가 있어서 한번 타봤는데 가슴이 탁트이더라고. 5년전부터 면허시험도 준비하고 책도 보고 했지요.

3년 전부터는 면허도 땄으니 요트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크로아티아에 가서 구입했어요. 그게 첫 번째 요트였어요.

영국인을 고용해서 그리스까지는 타고 오고, 그리스에서 선적을 해서 실어 왔어요. 길이 39피트짜리 스키퍼급인데 이름이

‘망고너트’라는 배에요. 그 배로 1년간 우리나라 전국일주를 했어요. 전곡에서 진도, 제주로 갔다가 부산, 양포, 강릉까지 거쳐서

울릉도까지 갔어요. 독도 가려다 기상이 안좋아서 양포, 부산으로 해서 거제도 거쳐 전곡으로 복귀하는데 한달 더 걸렸어요.

그 배로 대양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배가 작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탈리아에 가서 더 큰 배를 샀어요. 지금은 일 하다가 틈나면

정박시켜 놓은 외국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오는 중이에요. 그 배를 타고 예멘을 거쳐 올려고 했는데 소말리아 해적 때문에 터키에서

선적해서 싱가포르에서 인수했어요. 랑카위, 푸켓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보르네오, 쿠칭, 코타키나바루를 거쳐

한국으로 오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배는 루손섬의 작은 마을에 정박해 있어요.”


-바다에서 혼자 항해할 때 두려운 생각은 안드십니까?


“두려울 때도 있지요. 폭풍 만나서 죽다 살아난 경우도 있고. 5m짜리 파도, 40노트 바람은 예사에요. 다들 ‘두렵냐?’고 물어봐요.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초행길을 가는건데... 요트 타는걸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두려움은 우리가 요트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거지요.”

 

-그렇게 두려운 걸 왜 하십니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집에서 TV를 보거나, 골프 치면서 인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에요.

요트 타기에 체력이 부족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안주하다 보면 사람이 쭈그러 들거든요. 나이 60 먹었어도 도전할 수 있는거

아니에요? 두렵다고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면 그 자리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어요. 안주하면 빨리 늙을 수 밖에 없는거야.

요트는 내 생활의 활력소에요. 우리는 요트문화에 익숙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일상 생활이에요.”

 

13살이나 많은 선배의 진취적 사고에 ‘방안 퉁소’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이 민망해졌다.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세워 볼 요량으로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舟遊天下 하려면 안전에도 신경을 써야할 텐데

수영은 할 줄 알아야죠?”라고 궁색한 질문을 던졌다.


“못해도 상관없어요. 처음에는 구명조끼를 입고 운항했는데 요새는 걸어만 두지요.

요트를 하다보면 스쿠바를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스크루에 뭐가 걸리면 들어가서 빼내야 하니까.

혹시나 해서 몸에 줄을 묶고 들어가기도 하지요. 연안을 운항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대양항해는 어려워요.

입출항 수속에 무선통신도 해야 하고 그밖에도 배울게 많지요. 특히 기상상황을 미리 파악해 대처하는 게 중요해요.”


-배가 작은데 멀미는 안하세요?


“처음에는 좀 했어요. 지금도 오랜만에 타면 첫날은 멀미를 해. 하지만 2~3일 고생하면 적응이 되거든요.

처음에는 참기 힘들지만 대양에 나가면 대책이 없으니 적응을 해야지요. 멀미는 ‘배를 타면 울렁거린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생기는거에요. 하지만 세상은 고정관념에 의해 움직이는게 아니에요.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 들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보통 조직의 일원으로 살면서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하지만 일단 그 조직을

벗어나면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닫게 돼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좋은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게 출세는 아니죠.

손바닥 만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 하다 보면 자기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돼요.대기업 임원? 다 쓰잘데 없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인생을 석차순으로만 해결하려고만 해요. 우리나라는 50살이 넘어서 자기 길을 갈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도전을 해야지요.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안하려고 하는데 그러니 일자리가 없지요.

노후도 불안해지고... 노후에 일이 없으면 사회에 짐이 되고 의료비만 쓰게 되는거 아닌가요?

나이 들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돼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데 배동문은 “시간나면 나 하고 같이 요트를 가져오러 가자”고 했다.

가슴이 철렁한 나는 “나중에 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연안 항해때 함께 탈 테니 꼭 불러달라”고 둘러댔다.

가까운 바다에서 타는 거야 괜찮겠지?


크로아 그리스.jpg

▶ 처음 항해_ 크로아티아(그리스)


어기

2014.03.21 12: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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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이는 고교시절 녹번동 집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다.

당시부터 모터 글라이더를 직접 만들어서 수색 일대에서 날리던 모형 비행기 선구자였다.

어려서는 항공기 제작의 꿈을 꾸었으나, 지금은 쉽지 않은 제조업을 운영하며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다.


이제 짬짬이 틈을 내서 요트를 타고 탁트인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다. You deserve it, man~

담에는 이태리에서 인수하여 혼자서 타고 오는 그의 항해 일기를 듣고 싶다.


헌종이가 나더러 필리핀으로 가서 배를 같이 타고 오자고 하였으나...

나는 멀미도 전혀 안하며 바다를 좋아하기에, 항해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헌종이에게 짐이 될까바 생각 중이다... ㅋㅋ

그 배를 타고, 자전거도 싣고, 거제도 사는 형철이네도 가고,

해운대를 거쳐 울릉도와 독도도 가고 싶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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