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총동창회 지부동호회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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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happy! Power Social Worker

아래 글은 서울고 동창회보 2014년 겨울호에 게재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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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요트 세일링을 즐기는 배헌종(20회) 동문이 요트를 구입해서 직접 운항해

우리나라로 가져 오는 과정의 일부를 일지 형식으로 정리한 두 번째 항해기입니다. 배동문은 그리스 라브리온에서부터

요트운반선에 선적하여 부산까지 해상으로 운반하여 2011년 12월초에 도착 후 수입통관, 등록, 검사 등을 거쳐

2012년 초부터 이 배로 대한민국 해안을 항해했습니다.

 

항해 셋째 날


밤새도록 폭풍에 시달리다 해가 뜨기 시작하니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밤사이 폭풍에 비바람이 불고 새까만 바다를 항해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더욱 힘들었다.

파도는 아직도 높고 바람은 세지만 해가 뜨고 날이 밝아지니 어둠 속에서 보다 훨씬 힘이 난다.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해는 뜨는구나…


아침은 초콜릿으로 때운다. 살기 위해서 먹는 거다. 억지로 밀어 넣는다.

해가 중천에 뜨니 바람도 조금씩 잦아들고 파도도 약간 좋아진다. 버텨 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직 난 청춘이란 말이야….


저녁때쯤 알바니아 해안을 지나니 거짓말처럼 바다가 조용해진다. 어쨌든 오늘 밤만 지나면 그리스 영해에 도착한다.

알바니아 영해로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는 요트맨들의 조언이 무척 신경 쓰인다. 알바니아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서도 경제가 궁핍하고 사회가 불안정하여 입출항 시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항해 넷째 날


밤사이 그리스 영해에 도착해서도 지형이 익숙지 못하니 육지로 가까이 붙지 못하고

섬 사이를 조심해서 빠져 나오느라 정신이 없다. 이제 한나절만 더 항해하면 그리스 내해에 접어든다. 배가 고프다.

이틀 전에 해 놓은 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으니 세상천지 부러울 게 없다. 해가 중천에 뜰 때쯤 파트라스만 근처에 도착하니

이건 천국이다.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에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스하니 바다가 아니라 호수 같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맞는 말이다.


선수를 정동쪽에 맞추고 엔진을 아이들(Idle)로 낮추니 2노트도 채 되지 않는다.
이젠 한잠 자야겠다. 다른 배들이 알아서 피해 가겠지…. 뿌웅~ 하는 기적소리에 번쩍 잠을 깨니

멀리 안티리온교를 교행하는 배가 기적을 보낸다. 세 시간 남짓 정말 꿀잠을 잤다.


호수 같은 바다에 비치는 석양이 환상이다. 황금빛과 붉은 빛이 찬란하게 어우러진다.

가슴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런 맛에 요트 항해를 하는구나….
잠도 좀 자고 바다도 조용하고 사람 살 맛 난다. 저녁도 먹자. 이젠 마음도 여유가 조금 생겨 멀리 있는 풍경도 보인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불빛으로 장식한 안티리온교를 바라보니 다시 문명세계로 들어 온 듯하다.

자정이 지나 유리알 같은 코린토스만에 접어들어 하늘을 보니 이건 장관이다.

선수 쪽 데크에 매트를 깔고 누워 하늘을 뒤덮은 별들을 바라보니 너무 아름답다.

여태껏 뭘 하고 살았는지? 너무 메말라 버린 나 자신이 두렵다.

 

항해 다섯째 날


앞으로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코린토스운하에 도착한다.
운하입구의 코린트항에 잠시 기항을 하면 좋겠는데 아직 입출항 절차에 익숙지 않아 걱정이다.

외국 항구에 도착하면 세관, 검역, 입국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책으로만 읽어 봤지 경험이 없으니…  부딪쳐 보자.

 

운하.jpg

▲ 코린토스 운하 입구

 

항해 여섯째 날


아침 7시경에 코린토스운하 입구에 도착하니 황당하다.

넓은 운하 입구에 요트 몇 척과 계류 중인 크루즈선이 두 척 뿐이고, 해변에 건물도 별로 없어 항구 같지가 않고

그냥 선착장이다. 잘 모를 때는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제일 좋다.

 

나도 앵커 내리고 잠도 좀 자고 상황을 지켜보자. 막 냉커피 캔을 따려는데 VHF 통신기가 시끄럽다.

어제 밤에 도착한 듯한 요트에서 “커널 콘트롤! 커널 콘트롤!” 운하 통제실을 부른다.
그런데 어?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운하통제실에서 현재 파업 중으로 언제 운하가 열릴지 모른다는

황당한 답변이다. 그리스인답다. 여기서 외해 쪽으로 돌아가려면 3일이 더 걸리는데….  에라~~ 잠이나 자자.


한참을 자고 나니 VHF 통신기가 또 시끄럽다. 아까 그 요트에서 통 사정을 하자 한참을 떠들더니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오늘은 파업으로 원칙적으로는 운하가 폐쇄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특별히 오후 1시에 한차례 운하를 개방하는데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니 참고하란다.

허허… 돈만 주면 안 되는 일 없는 몇 안 되는 유럽국가 중 하나가 그리스라더니...  

    
1시경이 되니 슬금슬금 입구로 모여 들어 파워요트가 먼저 진입하고 뒤따라 세일요트가 따라간다.

운하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폭이 10M 정도로 좁고 직선이다. 큰 배는 지나가지도 못한다.

파나마 운하처럼 해수면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 고구마처럼 튀어 나와 있는 부분의 잘록한

부분을 깎아 물길을 만든 것이다. 운하통행료 100유로, 추가 100유로(파업격려금?). 참 좋은 나라다.

이제부터는 에게해를 항해한다.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도착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항해 일곱 번째 날


말로만 듣던 에게해를 항해하니 기분이 묘하다.

바다도 조용하고 바람도 별로 없어 조금은 무료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은 지나가는 상선들도 보이고 항해하는 기분이 든다.


라브리온의 선사 에이전트에게 전화해 내일 밤쯤에는 도착하는데 어디에 정박하느냐고 물으니

그냥 선착장 아무데나 빈 곳에 계류하란다. 물어 보는 내가 잘못이지….  매사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살아 온 게 이상하다.

이제부턴 조금 엉성하게 적당히 사는 것도 배워야겠다.

 

항해 마지막 날


이제 많이 익숙해 졌다. 역시 부딪쳐서 경험하고 극복해 보는 것이 최선이다.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나이에 따질게 뭐 있으며 아쉬울 게 뭐 그리 많겠나.

흘러가는 물결처럼 살자.

 
자정이 훨씬 넘어 목적지 라브리온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구글 지도를 프린트해 온 것이 무척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던 항내의 위치나 진입 방법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항구에 아무도 없다. 큰일이다. 누군가 계류줄을 잡아 줘야 하는데…. 

항내를 한 바퀴 돌다 보니 대형 선박이 계류하는 곳이 비어있다. 새로 만든 호안이라 아주 큰 범퍼가 눈에 띈다.

에이전트 말대로 아무데나 배를 대 놓고 아침에 보자. 겨우 카우보이처럼 계류줄을 던져 계류하는데 성공한다.
이제 요령이 많이 늘었다. 아침에 에이전트한테 배를 인계하면 알아서 하겠지….

여기는 돈만 주면 모든 게 해결되는 나라 그리스 아닌가. 푹~ 자자.

 

<다음 호에 계속>

 

이스탄불 터키-축소.jpg

▲ 이스탄불 터키


어기

2014.12.04 16:50:49
*.10.58.36

동창회보 다음 호 부터는 첫번째 요트보다 좀 큰배를
유럽에서 인수하여 헌종이가 직접 서울까지 타고오는 본격적인
항해기를 게재한다.

 

단 해적이 출몰하는 소말리아 근해 아덴만은 선적을 하였으며
나머지 구간은 홀로 항해를 하여 들여 온 흥미진진한 스토리이다.

 

한달간 항해하고, 들어 와서 공장 한달 운영하고 다시 나가고...

대단한 정열을 소유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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