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산행기
우리는 눈과 얼음의 길을 지나
3
월의 다리에 와있다
.
이 다리에는 꽃샘추위로 무장을 한 동장군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다
.
이 다리만 건너면 진달래
,
개나리
,
복사꽃
,
살구꽃 등의 꽃밭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건널 수가 있겠는가
.
꽃샘추위가 며칠간 계속 되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천역에 입산회원들이 모였다
.
입산회
3
월 정례 산행으로 관악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다
.
계획상으로는
10
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기다리느라
30
여 분 지체되어
11
시가 다 되에 출발했다
.
관악산은 예로부터 가평 화악산
,
개성 송악산
,
파주 감악산
,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의 하나로 불릴 정도로 바위 경치가 뛰어난 산이다
.
오랜만에 참석한 우제룡 회원을 비롯한
9
명의 등산 마니아들은
과천교회를 옆으로 끼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아침에는 제법 쌀쌀하였으나 기온이 점차 올라가고
더구나 바람이 없으니 등산하기에는 쾌적의 조건이다
.
한 시간여를 올라가니 경마장을 비롯한 과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시계가 양호하여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니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 같다
.
능선 왼편으로는 연주대와 연주암이
친숙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
연주대라는 이름은 애틋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
옛 임금 을 그리워했던 고려 유신 열 사람이 관악산 절에 숨어살며
경복궁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연주대
(
戀主臺
)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연주암은 신라
30
대 문무왕
17
년
(677
년
)
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
이 절에 있는
5
층 석탑은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
전해 오는 말로는 태종의 첫째 왕자 양령대군과 둘째 왕자 효령대군은
동생인 충령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관악산에 들어와 입산 수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그러나 그들 심정은 얼마나 쓰려겠는가
.
그래서 처음에 관악사라 부르던 이 절을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두 왕자의 심경을 읽어 연주암
(
戀主庵
)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오늘의 등산길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하기도 하고 능선을 따라 걷지만
암능이나 암봉이 없어 트레킹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우리는 아홉 명이 앉기에 딱 좋은 곳을 잡아 점심 식사를 하였다
.
우제룡 회원은 술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친구들을 위해 막걸리와 소주를 준비해오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
나는 옆에 있는 김부경 회원의 더덕주의 색깔이 멋있어 그에게 한잔을 부탁하였다
.
향기가 입안 가득히 차는 것을 느꼈다
.
이렇게 좋은 향기가 있나
.
그래서 옛 사람들은 화향백리
(
花香百里
)
주향천리
(
酒香千里
)
라는 말을 했나 보다
.
식사하면서 우리들은 아베의 잘못된 역사관을 비판하였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다시 자리하게 된다는 인식을 같이 했다
.
하여튼 오랜만에 고담준론
(
高談峻論
)
을 즐긴 자리였다
.
식사후에 하산하는 길은 조철식 회장이 안내하였다
.
그는 선바위역 방향으로 가자고 하였다
.
입산회에서 관악산에 그렇게 많이 왔어도 이 루트는 처음이란다
.
그런데 의외로 길이 좋고 오솔길 같이 난 길이 모두 좋다고 하였다
.
우리는 이 길을
‘
조철식 루트
’
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
산을 다 내려오니 화려하게 지은 빌라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
개천가의 목련에서는 꽃망울이 앙증스럽게 올라온 모습이 눈에 뜨인다
.
여기저기 봄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
사당과 과천을 잇는 대로 저편으로
‘
봉평메밀막국수
’
음식점이 보인다
.
뒷풀이 장소로 좋을 것 같았다
.
파전과 삽결살을 시켜 놓고 시원한 막걸리와 소주로 오늘의 산행을 반추했다
.
오늘은 특히 정주성 회원이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 근무했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
집시가 유럽에서 제일 많은 곳이 루마니아란다
.
마지막 코스로 나온 메밀 막국수는 오늘 산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
왜 그렇게 맛이 있는지
...
오늘 성대한 뒷풀이의 플러스 알파 스폰서는 박준상 원장이 해 주었다
.
감사합니다
.
참석자
:
박준상 우제룡 이수한 석해호 조철식 김부경 김종국 정주성 김풍오
(9
명
)